그는 부동산 투자가로 이름을 날리던 1990년대에 두 차례나 한국을 찾았다. 그가 들른 곳은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대우자동차였다. 트럼프와 김우중의 사업적인 인연은 1997년에 시작됐다. 그해 9월 대우건설은 트럼프의 기업 ‘트럼프사’와 합작해, 미국 뉴욕 맨해튼 섬 중심부 동쪽 46번가 1애비뉴에 지상 70층 짜리 주상복합 건물을 지었다. 2001년 중공한 이 건물은 트럼프월드타워로 2001년 준공 당시 맨해튼 최고의 주거용 건물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트럼프는 사업의 침체로 파산 지경에 놓여있던 시기였다. 빚더미에 오른 그를 배려하여 ‘트럼프’라는 브랜드 사용료를 파격적으로 후하게 지급했다. 김우중의 지원은 사업가 트럼프를 무사히 재기하게 한, 큰 힘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옥포조선소에서 요트 주문한 트럼프
맨해튼 사업을 계기로 트럼프와 김우중은 긴밀한 사업 파트너가 된다. 1998년 6월 김우중은 트럼프를 한국에 초청했다. 트럼프의 비공식 첫 방한이었다. 그는 거제 옥포조선소(대우중공업)를 찾았는데, 이곳에서 대형선박 하나를 가리키며 "자신의 개인용 요트로 쓰고싶다"면서 즉석발주를 하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날 트럼프는 대우차 군산공장을 둘러본 뒤, 아도니스 골프장(경기도 포천)도 방문했다. 대우그룹 소유의 이 골프장에서 트럼프는 김우중 부인 정희자(전 대우개발 회장)씨와 함께 라운딩을 했다.
트럼프는 1년 뒤인 1999년 5월 다시 한국에 찾아온다. 김우중은 맨해튼빌딩을 지으면서 한국에도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시대를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대우건설은 ‘트럼프 브랜드’로 국내에도 주상복합을 도입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첫 사업으로 여의도에 빌딩을 짓기로 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한층을 털어 수영장과 스포츠센터를 설치했으며 1층 입구를 호텔로비처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이 건물은 타워팰리스와 함께 국내 초고층 아파트의 벤치마크가 된다.
자신의 이름을 딴 빌딩을 보러왔던 트럼프는 “온돌마루가 인상적”이라면서 “뉴욕에도 한번 적용해볼 만하다”며 한국의 주거양식에 관심을 보였다. 또 그는 "외환위기 이후 침체되었던 한국 부동산시장이 금리 안정에 힘입어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한국에서는 빌딩 임대보다 주택사업이 더 유망해 보인다"고 슬쩍 홍보를 곁들였다.
사전 청약자들, 한강 헬기조망 서비스
트럼프빌딩은 요란한 마케팅을 벌였다. 뉴욕 교포들에게 40가구를 예약 분양했고, 사전청약자들을 초청해 헬기로 한강 일대를 조망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1차 분양이 큰 성공을 거두자, 이듬해인 2000년 여의도, 2001년 용산에서 잇따라 건물을 지었다. 대우건설은 5년간 전국 7개 단지에 트럼프주상복합을 지어 아파트 2386가구와 오피스텔 878실을 분양을 했다. 이후 이 아파트는 ‘월드마크’로 브랜드가 바뀐다. 그동안 대우건설은 트럼프에게 75억원 가량의 브랜드사용료를 냈다.
지난 9일 83세로 별세(향년 83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삶에 대한 기억들은, 빛과 어둠이 함께 뒤엉켜 있다. 고인에 대한 야박한 평가를 삼가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IMF 시절, 그룹의 거대한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화려했던 성공신화가 무참히 깨지던 충격은 지우기가 쉽지 않다.
그의 삶이 이 나라의 고도성장의 기적과 모순을 집약하고 있다는 지적은 그런 점에서 일리가 있어 보인다. 순식간에 국내 4대 그룹에 진입했고 동유럽과 동남아를 선발적으로 개척하던 그 저력을 우리는 한때 ‘샐러리맨 신화’라고도 불렀고, ‘세계경영’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이룬 내부에는 심각한 정경유착과 무모한 차입경영이 숨어있었다. 그의 삶은 한 개인의 삶이기도 하지만, 이 땅의 기업사이며 경제사의 질곡을 그대로 품고 있다.
세계경영의 김우중과, 정치적 '세계경영' 중인 트럼프
그런 김우중과, 풍운의 사업가로서 미국의 대통령에 올라 정치를 ‘사업’처럼 실행한다는 평가를 받는 트럼프의 인연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자본’이 지닌 탐욕과 이기(利己)의 속성을 초유의 외교방식으로 굳혀 나가고 있는 트럼프를 김우중은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궁금하다. 당시 사업 실패로 실의에 빠졌던 트럼프에겐 고인이 된 이 땅의 기업가 김우중이 은인이었을 수 밖에 없지만, 아마도 지금 그에겐 그때의 고마움을 세세히 살필 만한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트럼프의 ‘사업’은, 특유의 기업가적 허세를 활용한 '미국식 세계경영'의 영역으로 옮겨왔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