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냉전 시기, 미군은 모의 군사훈련을 하면서 팀내에 가상의 적군을 만들었다. 아군을 블루팀이라 하고 적군을 레드팀이라 불렀다. 이후 레드팀은, 조직 전략을 점검하고 보완하기 위한 특별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들은 조직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조직 내부의 취약점을 발견하고 공격한다.
레드팀을 활용하는 까닭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봄으로써 경쟁사나 공격자 입장에서 허술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적 사고나 자기 중심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는 조직의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적용함으로써 전체적인 통찰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레드팀이 효과를 내려면, 팀원들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팀의 독립성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레드팀이 제시한 비판과 이견을 의사결정자가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레드팀은 확신과 낙관, 집단사고 속에 묻혀 있는 숨은 리스크와 놓친 기회를 찾아내며, 불확실한 경쟁 환경에서 기업과 조직을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실의 직시와 다른 관점의 성찰을 통한, 직언과 비판이 레드팀의 역할이며, 그 자유를 완전하게 보장하는 것이 바로 레드팀 경영의 핵심이다. CEO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마음 속의 '레드팀'이 필요하다.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과 행동과 목표들을 향해 레드팀을 가동해 치열한 비판을 가하여 봄으로써, 그것이 담고 있는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레드팀과 비슷한 것이 중세 로마의 교황청에 존재했다. 바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다. 악마의 대변인은 성인으로 추대되는 후보자의 흠결을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두루 훌륭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가장 까다로운 비판자의 시선으로 그의 문제를 드러내는 존재다. 악마의 대변인은 최선을 다하여 성인 후보자의 그릇된 면모를 부각시키며, 그가 이런 행동을 할 자유를 교황청은 충분히 보장해주었다. 악마의 대변인 또한 궁극적인 목표는, 성인 추대 시스템의 객관성을 유지하여 그 추대의 권위를 완전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악마의 대변인과 레드팀은,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시스템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야의 정치적 구도는, 블루팀과 레드팀을 갈라 이견들을 통합함으로써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제도에 가깝다. 블루팀과 레드팀의 갈등과 분쟁에 민주주의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이견 속에서 전체적인 상식과 진실을 찾아내는 지도자의 안목과 지혜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악마의 대변인은, 법무장관 인선과정에서 생겨난 일련의 갈등을 떠오르게 한다. 인사청문회장에서 열심히 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야당 의원들은, 원칙적으로 후보를 흠집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인사제도의 완전함을 추구하기 위해, '객관화의 수단'으로 등장한 존재이다. 그들은 정부나 여당의 진짜 적이 아니라, 제도를 완성시키는 '가상의 적'인 레드팀일 뿐이다. 한쪽이 다른쪽을 완전히 궤멸하겠다는 발상은, 시스템을 파괴하고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제도를 택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 개입한 검찰 또한 같은 미션을 지닌다. 이들 또한 자신들의 상관으로 앉은 법무장관을 흔들어서 자신들이 누려온 특별한 권한과 조직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유난한 방식으로 수사를 가동하고 있는 존재라고 보기 이전에, 그들의 원천적인 임무인 '악마의 대변인'역할을 읽어야 한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 장관 임명자의 그릇된 면모를 찾아내는 일은, 검찰의 흉계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맡은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이 충실함은, 결과적으로 장관 임명시스템이 지닌 불완전한 점을 보완하는 일이다.
물론 그간의 검찰이나 야당이 행해온 궤도 이탈과 불건전한 비판행위들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저 상식이 이미 작동하지 않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상의 적을 배치함으로써 최선의 결론을 얻으려 하는, 레드팀의 큰 그림을 이해하기만 해도, 시스템 내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에 대한 과도한 적개심은 줄일 수 있다.
레드팀에 대한 대통령의 불만 또한, 레드팀을 진짜 적으로 여기고 블루팀만을 자신의 국민으로 여기는 인식의 편협에서 발생한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레드팀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역할 속에서 문제의 전체적인 퍼즐을 맞춰내는 통합적 인식이 있어야, 최근 거듭되어온 혼란 정국을 풀어갈 리더십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