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로 잠깐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선 ‘The 위대한 검찰’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이 모임은 <문재인·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발간을 기념하여 열린 검찰개혁 콘서트다.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과 조국 서울대교수가 무대에 나란히 앉았다.
조국 교수가 입을 연다. 검찰개혁을 위한 전제조건 3가지를 강조한다.
이날 토크쇼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검찰을 비판하는 자리였다. 문재인 당시 이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검찰은 권력과 유착해서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하고 무죄가 되어도 문책을 받지 않으며 오히려 인사를 통해 보상을 받는다. 또 검찰은 자신의 권한을 키우기 위해 정치권력과 유착하고 야합을 한다. 권력의 비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권력과 입장을 달리하는 반대파에 대해선 표적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는, 검찰의 정치화 혹은 정치편향이 문제다. 검찰이 수사와 소환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도 인권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또 문 당시 이사장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눈치보기 때문에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 그 바람에 권력형 비리가 발생하는데, 이를 제대로 수사할 기구가 필요하다. 이 기구는 검찰을 견제하고 검찰의 잘못을 문책할 수 있는 장치다.”
# 법무장관, 조국 교수는 어떻습니까
이때 조국 교수가 “법무장관이 아주 중요한 자리인데, 누구를 임명할 거냐”고 묻자, 문 이사장은 “여러분, 조국 교수는 어떻습니까?”라고 객석에 질문을 한다. 그러면서 ‘법무부의 비검찰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을 붙인다. 그 무렵으로선 ‘꿈’으로만 생각되었을지도 모르는, ‘구두임명’에 조국 교수는 “나는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외엔 자리 욕심이 없다”고 소박한 답변을 한다.
이 ‘문재인드림’이 아주 일그러진 모양으로 깨진 것이 지난 14일이었을 것이다. 저 콘서트 이후 약 8년 만의 일이다. 조국 법무장관은 검찰개혁 불쏘시개의 쓰임을 다했다고 말하면서 결국 옷을 벗었다. 2011년에 나온 문재인의 <운명>에는 법무부의 비검찰화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추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간절한 의지와 공수처를 설치하지 못한 회한이 담겨있다. 올해 들어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검찰 개혁'은, 이 정부로서는 명운을 거는 승부처다.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조국사태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필생의 임무를 막 진행하려는 찰나에, 핵심 주체인 조국의 어이없는 ‘개인적 흠결’이 여론을 타고 증폭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사소해보였던 그 문제들이, 촛불정부가 표방한 도덕적인 기준들을 튀어나가면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 대통령의 입장에서 본 '조국사태'의 당혹
아마도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태가, 검찰개혁에 대해 의지가 없는 지난 시대의 정치권력과 검찰 자체의 개혁 흔들기와 방해 공작에 의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자녀의 입시와 관련한 관행적 반칙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아주 나빠졌다. 그 자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부유한 좌파가 누리는 더 많은 기회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한 건 절체절명의 순간에 윤석열의 검찰이 등장해 법무장관의 발밑을 파는 대대적 수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국 장관은 자기 입으로 뱉은 말들이 하나 틀림없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머리카락이 쭈뼛했을 법하다.
갈 길은 먼데, 자꾸만 장애물이 나타나는 형국이었다. 마침내 주위의 여권 인사들이 ‘조국의 검찰개혁’은 일단 접으라고 권유하는 상황과, 쭉쭉 빠지는 민심의 그래프들 앞에서, 대통령은 일생일대의 포기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조국 수사의 '여진'은 남아있지만, 중대 고비는 지나간 듯하다. 그런 폭풍이 지나간 잔해에 앉아, 그는 주저앉은 마음을 추슬러 다시 검찰개혁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기까지가, 대통령의 눈으로 본, 이 나라의 정치풍경이다.
조국 사퇴 후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올라왔다. 이 조사결과는, 여론이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를 간결하게 보여주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달가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숙원사업이던 검찰개혁을 이룰 적임자를 놓는 상황은, 지지율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조국이란 개인보다 그 대의(大義)를 포기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뜻을, 단순히 ‘자기 사람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고집’쯤으로 읽는 민심을 바라보며 가슴을 쳤을지 모른다. 16일 김오수 법무부 차관을 불러 “감찰이 검찰 내에서 아주 강력한 자기 정화 기능이 될 수 있도록 감찰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은, 조국을 놓았다고 검찰개혁의 의지를 결코 놓은 것이 아님을 천명하고자 하는 뜻으로 보인다.
# 국민이 검찰개혁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촛불혁명은 시민들이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국정농단을 ‘반대’하는 뜻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시위 당시에는, 새로운 정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그 혁명의 뜻을 받들어 새로운 정부에서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민주국가의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광화문에서 열렸던 대대적인 시위는, '가족들의 혐의가 드러나고 있는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에 대한 반대였을 뿐, 문 대통령 전반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으며 그것이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라고는 볼 수 없다. 마찬가지 논리로, 서초동 집회와 서로 대결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기는 하지만, 광화문에서 이 정부의 검찰개혁 의지 자체를 결코 반대하는 민심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고질적인 검찰의 행태에 대한 이 정부의 혁신을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광화문 시위와 서초동 시위가 번갈아 열리던 때, 대통령이 취한 ‘진영주의’의 모습은 민심의 일부만을 유의미하게 읽어내는 듯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면모를 보인 점이 있었다. 굳이 풀이하자면, 검찰 개혁에 대한 집념이 맹렬했던 나머지, 그것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상황들을 외면하고 싶었던 인간적인 맹점이었을지 모른다.
지금 정부가 민심 일부의 이반을 걱정한다면, 조국사태 와중에 생겨난 진영주의 갈등의 증폭과 정치적 균형감각에 대한 의문, 집권층이 저지른 반칙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외면함으로써 생겨난 정권 신뢰의 미세한 균열을 치유해야 한다. 검찰 개혁은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되어야 가능한 과제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고 간절하더라도, 지지자들만 이끌고 개혁의 고지를 밟을 순 없다. 그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66일이었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