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싸늘한 우승 세리머니였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시즌 2승을 달성한 날, 거듭 고개를 숙여 사죄하기 바빴다. 우승 세리머니를 위해 오른손을 들지 않고, 갤러리를 향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운 탓이었다.
29일 KPGA 코리안투어 DGB 볼빅 대구경북오픈 최종 4라운드. 우승을 차지한 김비오가 고개를 숙였다. 우승을 확정지은 마지막 18번 홀 그린에서도 고개를 깊이 숙였고, 우승 후 공식 기자회견장에서도 우승 소감보다 사죄만 하다 끝났다.
코리안투어 2010년 대상, 신인왕, 최저타수 1위 등을 석권한 김비오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진출했다가 코리안투어로 복귀해 통산 5승을 수확했다.
하지만 김비오는 우승을 하고도 큰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사건은 16번 홀(파4)에서 일어났다. 1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던 김비오가 티샷 실수를 했다. 스윙 도중 갤러리 틈에서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린 탓에 드라이버를 놓쳐 제대로 샷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김비오는 갤러리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욕설을 한 뒤 자신의 드라이버를 바닥에 내리치는 등 불 같이 화를 냈다. 이 장면은 TV 중계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성숙하지 못한 갤러리 문화도 문제지만, 선수가 갤러리를 향해 노골적으로 손가락 욕설을 하는 행위는 충격이었다. 심지어 이 장면이 온 가족이 보는 안방에 생중계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날 중계를 맡은 송경서 JTBC 골프 해설위원은 “안타까운 장면이다”라며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이라도 자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샷도 실수를 저지른 김비오는 화를 누른 채 세 번째 샷을 가까스로 그린에 올린 뒤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이후 평정심을 찾은 뒤 끝내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건 축하가 아닌 비난의 목소리였다.
김비오는 “그때 몹시 힘들었다. 몸이 너무 힘들다고 캐디에게 호소하며 경기를 하고 있었다. 우승 경쟁을 하던 터라 예민했다”면서 “캐디가 조용히 해 달라, 카메라 내려달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절묘했다. 차라리 더 빨랐거나 늦었다면 괜찮았을 텐데…”라며 “딱 다운스윙이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멈추려고 했지만 안됐다”고 털어놨다.
상황 설명 뒤 김비오는 사죄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다. 다 내 잘못이다”라며 “내 행동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벌이든 받아들이겠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갤러리의 성숙하지 못한 매너가 문제가 되더라도, 김비오의 행동은 프로의 품위를 망각한 볼썽사나운 행위였다. 김비오는 “손가락 욕설은 특정인 대상이 아니었고, 그냥 소리 난 방향으로 몸을 돌려 순간적으로 했던 행동”이라면서 “미국에서 어릴 때 또래들과 골프를 하다 보니 감정 표현에 솔직한 편이다. 16번 홀 이후 많은 생각을 했다. 더 성숙한 선수가 되겠다”라고 거듭 사과했다.
그러나 그가 이미 저지른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희대의 사건’이 돼 버렸다. KPGA는 30일 오후 2시 상벌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김비오의 ‘손가락 욕설’ 행위에 대한 징계수위를 논의할 예정이다.
김비오는 이번 대회 우승 소감에 대해서는 “남은 3개 대회에서 한 번 더 우승하고 싶다”며 “제네시스 대상을 받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김비오는 이 대회 우승으로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