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인문학]'기레기'라는 말을 쓰는 벗에게

2019-09-21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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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기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나이트 크롤러'의 한 장면.]



그릇된 무엇인가를, 혹은 그릇되었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욕하는, 반사의 힘으로 자기를 소독하려는 마음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욕설에는 일정 분량의 자해와 동반자살과 오염과 전염의 물질이 들어있다네.

물론 지구의 혈압을 높이고 태양을 열받게 한 인간들의 '쓰레기 콤플렉스'가 깊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알겠네. 쓰레기란 버려야할 것이고, 버릴 데가 마땅치 않아서 늘 고민하는 것이고, 편리나 번성의 뒤안길에 쌓인 분뇨같은 것이고, 결국 인간 전부가 쓰레기가 되어 천지의 저주를 받을 운명임을 예감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네.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 전부를 쓰레기 속에 묻어버리는 그 순간, 언어와 문자로 거대한 문명을 이룩해온 중대한 진화를 부정하는 거칠고 각박한 논리 안에 자신 또한 파묻게 되는 것이네. 그간 수많은 기자가 해온 적폐가 있을 것이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더러운 짓들이 분명히 있을 터이지만, 그렇다고 평생 기자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일에 인생을 걸어온 지식인들까지 싸잡아 침을 뱉는 일은 악행에 가까운 일이 될 수도 있네. 기자 중엔 쓰레기 취급을 받을 만한 일을 하는 존재도 있겠지만, 어찌 그런 존재만 있겠는가. 기레기라는 말로 모든 언론인들을 공격하는 일은 부당할 뿐 아니라 세상의 품격을 격하게 떨어뜨리는 일일세.

신문이 디지털 문명을 만나면서, 기업적 생존환경이 척박해지고 기존 방식으로써는 전망이 흐려진 것이 사실이네. 미디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독자의 요구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네. 뉴스콘텐츠 소비자가 원하는 높이와 현행 매체들이 제공하는 높이의 현격한 차이에서 생겨나는 불만들이 이런 욕설의 환경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네. 미디어가 독자와 세상의 진실을 위한 치열한 고민 대신, 생업을 위한 구차하고 비열한 유혹에 쉽게 근접하는 현실에 대한 구역질도 짐작하네. 그러나 언론 또한 변신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고, 사활을 걸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려고 날마다 비장한 결의를 다지는 측면도 있네. 그 모두를 기레기 속에 넣어버리면, 언론에 대한 시대적인 요청까지도 함께 소각하는 셈일세. 

그 말을 써서, 대통령을 대레기라고 하고, 법무장관을 법레기라고 하고, 교수를 교레기라고 하고, 판사를 판레기, 검사를 검레기라고 하고, 야당의원을 야레기라고 하고, 공무원을 공레기라고 하고, 외교관을 외레기라고 하고, 소설가를 소레기, 시인을 시레기라고 하고, 페북에 글쓰는 자를 페레기라고 하고, 댓글 다는 자를 댓레기라고 하고, 블로거를 블레기라고 하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크레기라고 하고, 너를 너레기라고 하고 나를 나레기라고 하고, 우리를 우레기라고 하고, 친구를 친레기라고 하고 이웃을 이레기라고 하고 가족을 가레기라고 하고 아버지를 아레기라고 하고 아들을 들레기, 딸을 딸레기라고 하면, 그 말을 하는 벗은 좀 쓰레기에서 초월한 존재가 되겠나. 소독은 좀 되겠나.

쓰레기가 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 쓰레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네. 언론인들 중에서 입버릇처럼 기레기라는 말을 쓰는 이도 있기는 있다네.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네. 내 업무와 내 업행과 내 삶의 일부가 그것에 해당되는 점이 있다 해도 나는 그 욕설에 동의할 수 없네. 그건, 한 직업 한 인생에 대한 살처분과도 같은 것이네. 쓰레기로 인한 전염과 오염이 두렵다면, 벗의 집과 일과 생각과 입의 청소가 우선일지도 모르네. 이 쓰레기 병은 혓바닥으로 전염되는 것이니, 벗도 혹시 증상이 있나 되돌아 보게. 물론 벗의 경미한 질환이 곧 낫기를 바라네. 길에 널린 개똥도 약재로 쓰이지 않던가. 쓰레기통에도 아주 가끔 쓸만한 것이 있다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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