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드론쇼크에 오일쇼크…기름 '유탄'맞은 한국경제

2019-09-1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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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석유시설 피폭에 WTI 14.7%↑ (리야드 AFP=연합뉴스)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 여파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거래가격이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4.7%(8.05달러) 뛴 62.90달러에 마감됐다다. 사진은 사우디 리야드 인근 알쿠르즈 지역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석유시설.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석유시설 2곳이 14일 새벽 (현지시간)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피폭된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유전(油田)이 가동 중단되며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며 군사적 대응까지 시사하며 중동 정세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영향으로 글로벌 경제의 동반침체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에게는 '오일 쇼크'라는 새로운 악재가 더해진 셈이다.

지난 수년 동안 사우디의 석유시설이나 유조선이 공격을 받은 경우는 여러 차례 있지만, 이번 사태의 심각성과는 비교가 안된다.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 소유의 주요 석유시설이 엄청난 피해를 입어 사우디 전체 생산량의 절반인 하루 5백만 배럴의 원유 생산이 지장을 받게 되었다. 최근 우리 정부의 원유 수입 다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는 한해 우리 전체 수입량의 1/3을 차지하는 최대 원유 수입국이기도 하다.

사우디 유전 피폭 소식에 브렌트유 가격이 16일(현지시간) 장중 한때 20% 폭등했다. 이는 1990~91년 걸프전 이후 최대폭의 상승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원유 공급을 늘리기 위해 미국의 비축유를 방출하겠다는 약속에 상승폭을 줄였지만, 아람코의 석유 시설 복구가 늦어지거나,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행동에 나선다면 유가의 오름세는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유가의 상승은 100% 원유 수입국인 우리나라의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어 우리 정부와 기업은 '컨틴전시 프랜' 등 철저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할 때이다.

이번 사우디 유전에 대한 드론 공격 주체를 두고 책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중동 시아파의 맹주 이란의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 안보 당국자들은 위성 사진을 근거로 드론이 사우디 남쪽에 위치한 예멘이 아니라 북쪽 이라크나 이란에서 왔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중동의 라이벌이다. 예멘은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2014년 7월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예멘 정부를 상대로 무장 봉기를 일으키자 2015년 3월 사우디 주도의 아랍 동맹군이 개입하면서 내전이 본격화했다.

중동에서 미국은 친서방 국가인 사우디를 지원해 반미국가인 이란을 견제한다. 이란에 대해 군사공격 등 초강경 정책을 주장하던 존 볼턴 백악관 안보 보좌관의 경질로 이란 핵협정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이번 사우디 유전 피습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달 말 뉴욕에서 개막하는 유엔 총회기간 트럼프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대한 성사 여부도 이젠 불투명 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 범인이 누군지 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검증(결과)에 따라 장전 완료된(locked and loaded)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이 언제든 군사적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엄포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인 16일에는 백악관 기자들에게 드론이 이란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지금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확실히 그것(전쟁)을 피하고 싶다"고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게 미.중 무역 갈등과 북한 비핵화 문제에 이어 중동 분쟁 해결이라는 난제까지 떠안아야 하는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공격을 하기 위해선 사우디 공격에 이란이 개입했다는 증거와 명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우디 정부의 미국 개입 요청도 주요 변수이다. 미국의 과도한 군사 옵션은 자칫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 불을 던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트럼프가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따라서 공격이 있더라도 이번 사우디 유전에 대한 공습에 비례한 제한적 보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우디 유전 피습으로 국제 유가와 세계 경제에 대한 후폭풍 못지않게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갈수록 정교화되고 있는 드론의 무기화이다. 예멘 반군은 최장 1,500km 상공을 날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드론을 다량 구입한 것으로 UN은 밝힌 바 있다. 사우디 정부는 이란이 후티 반군의 최첨단 드론 구입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란과 후티 반군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번에 피습된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유전(油田)은 평소 고도의 경계와 보안 체제가 유지되는 곳이지만 드론의 공격에 속수무책 이었다. 후티 반군이 장악한 예멘 북부로부터 아브카이크까지 거리는 1300㎞나 된다. 예멘 반군의 고위인사 무함마드 알부하이티는 16일(현지시간) 이란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우리 무인기를 요격할 능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텐데 그런 능력이 없다"면서 "미국은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않고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한다"라고 말했다. 예멘 반군의 야흐야 사레아 대변인도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아람코 석유시설 공격에 제트엔진을 장착한 평범한 무인기 10대를 사용했다"라며 "사우디 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사람들이 도왔다"고 밝혔다.

미사일도 아니고 정체불명의 드론이 군사강국 사우디의 방공망을 뚫고 장거리 비행해 목표물을 불바다로 만든 것을 두고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의 허를 찌른 것과도 비교되고 있다. 북한의 드론이 한국의 상공을 몰래 휘젓고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 사우디 유전의 피습으로 핵.미사일 무기뿐 아니라 드론이나 사이버 공격(해킹) 등 북측의 다양한 비대칭 무기도 우리의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 시키고 있다. 미국이 이번 드론 공격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는 이란과 북한과의 군사협력도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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