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한 이 연설은 분단된 남북관계가 갈등을 딛고 평화로 화합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핵 없는 한반도'를 분명히 약속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 비핵화 여정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한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7개월 만에 북·미 실무협상 채널이 복원될 조짐을 보이며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진전에 따라 연내 3차 북·미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비핵화 골든타임이 도래했다.
◆北 "안전보장, 제재해제" vs 美 "아직 가야할길 남았다"
올 2월 베트남 하노이 담판 당시 비핵화·반대급부 합의에 실패한 채 헤어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노딜 재연'이 가장 큰 부담이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미 협상을 재선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빅딜 성사를 위한 니즈가 서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북·미는 이달 하순 비핵화 실무협상을 위한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돌입한다. 북·미 실무진에게 주어진 협상 시간, 즉 ‘골든 타임’은 앞으로 한 달 남짓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일단 정상 간 톱다운(하향식) 합의에 매달려 온 북한이 정상국가 간에 통용되는 보텀업(상향식) 정상회담 준비 방식을 받아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큰 진전이라는 게 외교가에서 나온 해석이다.
양측 협상 진용에서 초강경 인사들이 빠진 점도 우선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노이 회담 준비 협상 때까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고위급 카운터파트였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2월 말 회담 직후 일선에서 물러났고, ‘선(先)비핵화’론과 ‘빅딜’안을 고집한 ‘슈퍼 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최근 경질됐다.
◆北, 비핵화 조건으로 체제 안전보장·제재 해제 동시 요구
일단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안전보장과 제재해제를 더욱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지난 16일 담화를 통해 "우리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미국이 어떤 대안을 가지고 협상에 나오는가에 따라 가까워질 수도, 적의만 키우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안보불안을 해소할 제도적 보장 조치와 경제발전을 막고 있는 유엔대북제재 및 미국독자제재를 완화해달라는 게 자신들의 회담 의제임을 명확하게 밝힌 셈이다.
미국은 북한의 적극적 요구에 일단 한 발 물러났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16일(현지시간)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논의들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9월 하순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환영한다"고만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 발표할 어떤 만남도 없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했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 역시 평양 방문설에 대해 "아직 평양에 갈 준비가 안됐다"면서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며 "나는 그에 대해 언급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나는 나중 어느 시점에는 평양을 갈 것"이라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따라 그(김 위원장)도 미국에 오고 싶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중한 반응은 정상 간 회동보다는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를 통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무협상의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드러내면서 북한에 비핵화 결단을 압박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무협상단 수준의 사전조율 없이 정상 간 담판에 의존한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적극적 의지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선 실무협상 후 정상회담'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비핵화의 정의와 상응조치에 대한 가닥을 명확하게 잡고 테이블에 앉겠다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체제보장과 제재해제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하면서 실무협상이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