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그룹형지 최병오 회장 인터뷰 "까스텔바쟉 딛고 글로벌 패션그룹으로 도약"

2019-09-1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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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에 복지센터 건설계획...송도국제도시에 글로벌패션복합센터 신축

 

패션그룹형지 최병오 회장 [사진=패션그룹형지 제공 ]




크로커다일레이디, 샤트렌, 까스텔바쟉은 패션그룹 형지의 대표 브랜드다. 브랜드 주창자인 최병오 회장의 분신이다. 30세에 서울 동대문에서 옷 도매점을 열고 패션업을 시작했다. 이후 38년 만인 지난해 국내 패션기업 가운데 5위로 연 매출 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여성들이 옷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쉼없이 달렸다.
최 회장은 패션계에서 ‘불같은 사나이’로 통한다. 공교롭게 이름 가운데 빛날 炳(병)이 있고 형지의 형자도 등불 熒(형)이다. 사업을 하면서 ‘領先半步(영선반보)’하자고 다짐했다. 남보다 반 걸음 앞서가자는 뜻이다. 이름과 좌우명이 잘 맞아떨어진다. 칠순을 앞두고 있지만 부지런하다. 항상 웃는 얼굴이다. 계열사 임직원과 대리점 점주들에게 손편지,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직접 보내며 늘 소통한다. 중국 패션시장에도 진출했다. 여전히 젊다. 지난 8월 말에는 전남대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소감이 어떤가.
“분에 넘치는 영예를 안았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영광으로 생각한다. 지난 50여 년간 이룩한 성과와 국가, 사회 발전에 적게나마 공헌한 것에 대한 격려로 여기고 있다.”

- 서울,경기,부산에 사업체가 많은데 이 기회에 광주전남에 투자를 늘릴 의향은.
“ 전국에 골고루 2000여개 패션매장이 있다. 전남에도 매장이 많다. 이 지역 고객과 매장을 경영하는 점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특히 오래전부터 이곳에 복지센터를 지을 생각을 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곧 구체화할 것이다.”

광주시내 곳곳에 매장이 있고 전남지역 골프장 진입로에는 크로커다일레이디, 까스텔바쟉 홍보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업을 하게 된 동기는.
“부산 하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횟가루공장을 하셔서 7남매가 잘 살았다.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세가 기울었다. 가정 형편상 큰 형님 외에는 대학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다. 18살 때 친척이 운영하는 페인트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당시 짚으로 새끼를 꼬아 만든 샌드백을 마당에 걸어놓고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학창시절 복싱을 했는데 링 위에 올라 경기하면서 힘들어 할 때마다 코치님이 외쳤다. “야 임마, 이 순간만 참아!” 온몸에 힘이 풀려 죽을 것 같아도 다시 일어섰다. 그때 그 한마디가 평생을 지배했다. 난관에서 나를 가다듬는 든든한 무기가 됐다. (나중에 페인트가게를 운영했다고 하던데) 맞다. 페인트가게를 인수해서 20대에 사장이 됐다. 제법 잘 나갔는데 새로운 페인트를 개발하다 실패했다. 그 후 무작정 상경해 온갖 일을 다했다. 27살 때 제과점 사업도 했다. 유명 프랜차이즈 틈새에서 기본에 충실하고 고객들에게 퍼주기도 했다. 또 남다르게 해야 한다는 철칙을 실행하면서 고객이 제법 많았다. 성공과 실패를 맛보며 사업에 눈떴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경제사절단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최병오 회장이 마크롱 프랑스대통령과 환담하고 기념촬영을 했다.[사진=패션그룹형지 제공 ]



-서울 동대문에 옷가게를 열었는데.
“1982년 내가 30살 때다. 제과점을 잘 운영하는 것을 대견하게 여긴 동서가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성공해보고 싶은 단 하나의 생각으로 한평 남짓한 옷 도매상을 열어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패션그룹 형지의 모태가 됐다. 그때 주변에서 익힌 격언이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다. 한결같이 부지런한 사람은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 근면과 성실로 살았던 때다.”

-그때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는가.
“현장에서 배웠다. 페인트가게를 할 때부터다. 노루표, 삼화 같은 브랜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알았다. 제과점할 때도 프랜차이즈 대형 브랜드와 경쟁해야 했다. 동대문에서 의류상을 하면서도 브랜드 상품 출시를 시도했다. 주변에서 유난스럽다는 핀잔을 들으면서 ‘크라운’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만들어 적용해봤다. 작은 차이가 모이면 성공으로 가는가보다. 브랜드 의류처럼 태그도 여러 차례 달고 품질을 개선했다. 장사가 잘 됐다. 나중에 꼭 브랜드사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최 회장은 당시 사업이 크게 번창했지만 어음관리 소홀로 1993년 부도를 맞았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당시 주위의 큰 상인들이 어음 쓰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다 손을 대 큰코를 다친셈이다.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서는 기회로 삼았다”고 했다.

-3년 후 론칭한 ‘크로커다일레이디’가 크게 성공,여성 단일브랜드로 최대 매출을 올렸다. 비결은.
“재기를 도운 것도 결국 브랜드였다. 또 현장에서 터득한 ‘여성들이 옷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자’는 신념이 있었다. 1996년 싱가포르 남성복 브랜드인 ‘크로커다일’을 라이센스로 해서 여성복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론칭했다. ‘3050 여성 어덜트케주얼’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패션철학은 가성비와 실용성이 핵심이다. 고품질 중저가의류 패션브랜드시장을 구축한 것이 맞아 떨어졌고 마침내 블루오션을 창출하게 됐다. 당시 중년 여성의 옷은 백화점 옷 아니면 시장표가 전부였다. 그 중간의 틈새시장을 발견한 것이다. 이 덕택에 2007년 단일 브랜드로 매출액이 3000억원을 넘었다. 경이적인 성장이다. 지금은 20개 브랜드를 가진 패션그룹으로 남녀 노소 모두 옷입는 행복을 선사하는 명실공히 ‘국민복’기업을 실현했다. 전국의 2000여개 대리점 사장들과 상생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1960년대 제화의 명가 에스콰이어를 비롯해 학생복 엘리트, 시대셔츠를 잇따라 인수했다. 국내 전통브랜드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가.
“그렇다. 에스콰이어는 2015년에 인수했고 엘리트는 2013년,예작은 2012년 인수했다. 당시 이 회사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성복에서 성공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2010년 종합패션유통기업이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위대한 브랜드 유산을 지닌 이들 브랜드를 한가족으로 맞이 했고 이제는 새로운 명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 브랜드의 유산을 지키면서 기존 브랜드들과 함께 시너지 창출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6월 까스텔바쟉을 3년만에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사진=패션그룹형지 제공 ]




-프랑스 골프웨어 ‘까스텔바쟉’을 인수한 특별한 동기는.
“패션그룹 형지가 글로벌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까스텔바쟉을 맨 앞에 세운 것이다. 2016년 프랑스의 무형문화재급 아티스트인 쟝 샤를 드 까스텔바쟉이 소유한 명품 글로벌브랜드인 ‘까스텔바쟉’의 글로벌상표권을 인수해 별도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3년 만인 올해 5월 코스닥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다부진 표정으로)앞으로 글로벌시장 진출을 목표로 골프웨어는 물론 캐주얼,신발,화장품 등 새로운 상품 라인을 계속 확장해 선보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패션브랜드들과 맞서려고 한다.”

최 회장은 머지 않아 70살이 되지만 스티브잡스가 한 말 ‘Stay foolish, stay hungry’, 즉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는 말을 아직도 곱씹고 있다고 했다.

-좌우명 ‘領先半步’ 취지는.
“남보다 한 발자국씩 앞서가려면 금방 지치고 힘들어진다. 곧 포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 발자국만 앞서간다면 덜 힘들 다. 그런 차이가 누적되면 나중에 큰 차이가 되더라. 무엇보다 나는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고 정의했기에 조금만 더하자는 실천적 철학을 갖게 됐다.”

-그룹차원의 사회공헌사업은.
“오랫동안 기아대책, 유니세프 등 NGO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서울대,단국대 등 많은 대학에서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산학협력을 통한 인재양성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희망이 부족한 시대에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학생들과 내가 경험한 좌절, 실패, 재기의 인생을 공유하기 위해 강연에 나서고 있다. 벌써 500회가 넘는 대중강연이 내게는 하나의 봉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사업목표는.
“2013년 서울 동대문구 장안에 있는 쇼핑몰 바우하우스(현재 아트몰링 장안점)를 인수해 유통사업을 시작했다. 이어서 2017년 고향인 부산 하단에 대형쇼핑몰 ‘아트몰링 부산본점’을 오픈했다. 시민들이 보고 먹고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는 글로벌 형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가까운 송도국제도시에 ‘형지글로벌패션복합센터’를 신축하고 있다. 장차 본사를 그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편지경영’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말 그룹 계열사 임직원 800여 명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형지가 개발해 운영하는 부산의 쇼핑몰 아트몰링을 방문했을 때 느낀 소회를 담았다. “올해 결혼 40주년을 맞아 옛날 국제시장에서 자전거로 짐을 실어 나르던 시절이 떠올랐다. 남들 놀 때 힘들어도 열심히 일하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또 “아트몰링이 잘되는 것도 임직원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치하했다. 불황 극복에 관한 자신의 의지도 밝혔다. “형지에는 불황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고의 형지가 될 수 있다. 내가 선봉에 설 테니 시련을 보약 삼아 다같이 힘내자”고 했다.
최 회장은 올해 초 “형지를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만들어 가자”는 문자를 보냈고 2월에는 전국 매장에 김치와 함께 손편지를 보냈다. 마음을 담은 편지로 모든 직원들과 한마음을 이루고 있다.

최병오 회장

-1953년 생
-서울대 패션산업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서울대 경영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부산대 최고 경영자과정 수료,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
-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숭실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한국패션협회 부회장, 중앙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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