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긴 했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도 어느정도 숨통을 틔우는 듯 했다. 역내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급등하던 유로존 국채 금리가 안정을 되찾았다. 유럽을 빠져 나갔던 글로벌 자금도 복귀하기 시작했다.
드라기 총재는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에 한때 통화정책 정상화를 고민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따라 곧 통화긴축에 나설 태세였지만, 이미 금리인하에 나선 연준을 따라 통화정책을 다시 완화모드로 되돌릴 기세다. 유로존 안팎의 경제 흐름이 심상치 않아서다. 시장에서는 ECB가 오는 12일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연준도 오는 17~18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 금리인하를 단행할 전망이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지난 7~8월 내내 1%에 머물렀다. ECB의 물가안정 목표치의 절반에 불과하다. 지난 4월에는 1.7%까지 올랐었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7월 기자회견에서 "상당한 수준의 통화 부양책이 필요하다"며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구체적인 부양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ECB가 이번 회의에서 시중은행의 중앙은행 예치금 금리를 0.1%포인트 하향조정할 것으로 본다. 새로운 종류의 자산매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매달 약 500억 유로 규모의 채권 매입을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월간 600억 유로 규모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선보인 2015년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올리 렌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투자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강력한 경기 부양 패키지를 발표해야 한다"며 "둔화하는 글로벌 경기를 고려하면 ECB가 '실질적이고 충분한' 수준의 채권 매입을 포함, 신규 부양 조치를 내놔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BN암로은행은 “양적완화(QE)가 포함되지 않은 정책 패키지는 2021년 말까지 ECB의 인플레이션 전망과 목표 사이의 격차를 좁힐 가능성이 없다”고 내다봤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사비나 루텐쉴레거 ECB 이사는 “현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너무 큰 (부양) 패키지를 만들기에는 시기상 너무 이르다”며 "추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은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사용해야 하는데 아직 디플레이션 위험은 없다"고 지적했다.
'ECB 만병통치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소와 빌로이 데 갈라우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경제) 둔화의 원인을 감안할 때 통화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실수"라며 "ECB 통화정책의 의무를 수행하고는 있으나 모든 일을 할 수도, 기적을 행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유로존 경기둔화의 요인으로 꼽히는 미·중 무역전쟁과 브렉시트, 중국 성장둔화 등은 ECB의 통제 밖에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드라기 총재의 완화 행보가 연속성을 띨지 여부도 관심사다. 차기 ECB 총재로 내정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그는 최근 "유로존에서 '매우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ECB는 취할 수 있는 광범위한 수단을 이용해 행동에 옮길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6일(현지시간) "ECB는 수년간의 경기부양을 통해 대부분의 화력을 소진한 만큼 신중한 전투 태세를 마련해야 한다"며 "라가르드 총재가 11월 1일 ECB의 바통을 넘겨받는 것을 감안하면, 12일 공개되는 정책 패키지는 유로 챔피언으로서 드라기의 역할을 굳건히 하는 동시에 정책을 조종하기 위한 마지막 큰 움직임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