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대법 선고 D-1, 곳곳이 살얼음판…그 위에 올라선 무거운 과제들

2019-08-2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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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뇌물 인정시 파기환송심…삼성 리더십 안갯속

이 부회장 지속적 현장경영 행보…위기 정면 돌파 의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가운데)이 26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데일리동방] 국정농단 가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법원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삼성은 4월 이재용 시대 개막을 알린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최대 고비를 맞게 됐다.

◆대법원 말값・경영승계 청탁 인정 여부 관건

김명수 대법원장과 조희대 대법관 등 12명은 29일 오후 2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상고심을 선고한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선고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운명은 대법원이 최씨 딸 정유라 씨에게 제공된 말들의 소유권이 어느쪽에 있다고 판단하는지에 달렸다. 1심은 재판부는 코어스포츠 용역비와 마필 구매대금,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등을 합친 뇌물액 89억2227만원(횡령액 80억9095만원)을 인정해 2017년 8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반면 지난해 2월 이 부회장 2심은 최씨의 실질적인 말 소유와 별개로 형식적인 소유권이 삼성에 있다고 봤다. 마필과 차량 무상 사용 이익은 구체적인 산정이 불가능한 뇌물로 판단했다. 결국 이 부회장의 뇌물액은 코어스포츠에 낸 승마 지원 용역비 36억3484만원만 인정됐다.

또 다른 쟁점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현안 존재와 묵시적인 청탁 인정 여부다. 2심은 삼성이 최씨가 세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지원한 혐의도 당시 경영권 승계 현안이 없어 뇌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로 뒤집혔다. 최근 검찰은 2015년 이 부회장 경영승계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내 고의 회계가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중이다. 관련 증거 인멸 의혹에 대한 수사는 연루자 기소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이번 수사 과정을 유심히 지켜봐온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대법원이 16억원과 승마지원 용역비 36억원만 뇌물로 본다 해도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액은 최소 52억원이 된다. 이를 근거로 사건을 파기환송하고 고등법원이 대법원 판단을 그대로 따른다면 실형이 불가피하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르면 횡령・배임 등으로 제3자에게 50억원 넘는 이익을 줄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 부회장은 2심에서 횡령과 뇌물로 인정된 액수가 50억원 미만으로 떨어진 덕에 3년 이하 유기징역이 적용돼 집행유예가 가능했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부터 가능하다.

다만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1심 이후 1년간 수감생활을 했고 2심 과정에서 횡령금 전액을 변재한 점을 감안해 정상참작에 따른 작량감경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2심은 삼성이 정치권력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뇌물 제공에 응했다고 판단했다.

법정형이 징역 10년 이상인 재산국외도피죄 역시 무죄 판단이 이어지면 집행유예 가능성이 열린다. 1심은 특검이 공소 제기한 78억9430만원 중 삼성이 코어스포츠에 보낸 36억3484만원만 유죄로 보고 독일 삼성 계좌로 송금한 승마단 독일 전지훈련비 42억5946만원은 무죄로 봤다. 반면 2심은 코어스포츠 송금이 도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전부 무죄로 판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일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 광주 교육센터를 방문해 소프트웨어 교육을 참관하고 교육생들을 격려한 뒤 기념촬영 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선고 앞두고 현장경영 적극 홍보

삼성전자는 이번 대법원 선고 외에도 ▲반도체 불황과 모바일 약세에 따른 2분기 실적 저조 ▲일본 무역보복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재벌 개혁 ‘중요 조치’ 발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삼성전자 제품 관세 문제 제기 등 산적한 과제에 포위 당했다.

반도체가 주력인 삼성전자는 이번 선고에 따라 이재용이라는 구심점 없이 일본 무역보복이라는 험로를 헤쳐갈 수밖에 없다. 대법원 선고 전날인 28일은 한국이 일본을 백색국가(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첫 날이다.

이 부회장은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현장 경영 행보를 언론에 적극 노출했다. 일각에선 장외 변론이자 여론전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반도체 수급 위기와 중국의 공격에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중요한 선고를 앞두고 몸을 사려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리더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그가 최근 보여주는 행보는 삼성전자의 주요 과제를 보여준다. 이 부회장은 26일 충남 아산 소재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찾아 중장기 사업전략을 점검했다.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등 사장단과 대형 디스플레이 로드맵 같은 미래 신기술 전략도 논의했다.

삼성은 중국 패널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 속에서 폴더블 디스플레이 같은 혁신 기술과 자동차, VR헤드셋 기기(HMD) 등 새로운 영역으로 제품군을 늘리는 한편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 분야에서도 시장을 선도한다는 목표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삼성전자 온양・천안사업장을 시작으로 평택사업장(9일), 광주사업장(20일)을 찾아 미래 성장동력 발굴 현장과 전자 계열사 가치 사슬을 점검해왔다. 온양과 천안 사업장은 반도체 패키징 기술 개발과 검사 등 후공정을 담당한다. 9일 평택2사업장에서는 경영진과 반도체사업 전략을 논의하고 신규라인 건설 현장도 점검했다. 20일 찾은 광주 소재 소프트웨어 아카데미에서는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해 지금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위기와 기회 속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쉼없이 확보해가야 살아남는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2사업장을 찾아 경영진과 반도체 사업 전략을 논의하고 신규라인 건설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

◆미래 먹거리・내외 환경 줄줄이 고비

삼성전자 올해 2분기 실적은 반쪽짜리 어닝 서프라이즈로 평가된다. 매출 56조1300억원에 영업이익 6조6000억원으로 전기 대비 매출 7%, 영업이익 0.36%가 올랐다. 반면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 영업이익은 8.27% 떨어졌다.

특히 모바일(IM)부문 영업이익이 전분기 2조2700억원에서 31% 떨어진 1조5600억원을 기록했다. 예상보다 저조한 갤럭시S10 판매량과 마케팅 비용 증가, 갤럭시 폴드 출시 연기 등이 영향을 줬다. 올가을 노트10과 갤럭시 폴드 흥행이 단기 과제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비메모리 부문 1등 자리가 시급하다. 삼성전자는 4월 133조원 투자와 1만5000명 고용 창출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르겠다며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전세계 D램 점유율은 46%, 낸드 점유율은 38%였다. 연산과 추론으로 정보처리 기능을 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는 반도체 업황 불황을 극복할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하지만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D램 생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공정이 불안해졌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반도체 기판 회로 패턴 형성에 필요한 레지스트의 EUV용 제품은 대일 의존도가 5월 기준 91.9%에 이른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이 부회장의 재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은 26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부회장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은 재벌에 대한 특혜라며 그의 재구속과 경영권 박탈을 촉구했다.

지난달 일본 출장을 기점으로 광폭 행보를 펼쳐온 이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삼성의 리더십 공백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삼성 바이오로직스 수사로 삼성전자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는 기능을 상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마저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그룹 자체의 가온머리(컨트롤타워)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 부회장이 실형을 면해도 녹록지 않은 국내외 과제가 산적해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달 말 재벌개혁 관련 중요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따른 분식회계로 결론 날 경우에도 정상적인 경영 행보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밖에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과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에 따른 대응책 마련도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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