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 지소미아 종료, 변칙 외교, 불투명한 안보 미래

2019-08-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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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


외교에는 관행과 법칙이 존재한다. 관행은 국가들이 오랜 기간 외교를 통해 공동으로 축적한 인식을 토대로 세워진 외교의 관습, 절차, 형식, 방법과 의전 등이다. 외교에서 법칙의 의미는 약속의 준수이다. 즉, 체결한 조약과 협정의 법적 효력 생성 이후 최대한 이를 준수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의미한다. 국가들이 이를 지켜내려는 이유는 국제사회가 태생적으로 무질서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무질서에서 상대적 약소국의 생존권이 강대국의 힘에 희생되거나 박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들은 외교의 관행과 법칙을 지키려 한다.

작금에 우리나라가 일본 외교에서 보여준 행태는 자유민주주의국가가 오랫동안 견지한 외교적 인식, 관행과 법칙의 정신을 훼손시킨 것으로 심히 우려스럽다. 일본의 한국 ‘화이트 리스트’ 제외 결정에 우리나라는 한·일 군사정보교류협정(지소미아)의 연장 거부 결정으로 응대했다. 한·일 두 나라 각자의 주장과 이유는 자국민에게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외교는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외교적 해결의 실패는 힘과 권력을 대안으로 부른다. 오늘날 현대문명사회의 국가들이 외교로 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다.
우리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이유로 일본의 신뢰 훼손과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 누가 봐도 참 간단한 이유다.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정부의 외교 행태가 대외적인 설득력이 없어 그 후과가 두려워지는 데 있다. 외교적 고립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복안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외교적 책무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면서 이들의 안위와 행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우리정부의 외교 행위를 보면서 불안감만 더욱 커지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공산당 식의 외교 전철을 밟는 행보 때문이다. 20세기에 출현한 공산정권들은 전임 정권이 이른바 ‘제국주의’ 국가와 체결한 모든 조약과 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또한 기업과 부동산 등 외국의 모든 자산을 일괄 몰수했다. 이들 공산정권은 전임 정권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잔재 말살을 위해 이 같은 결정과 조치의 불가피성을 정당화했다. 이의 가장 비근한 예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중국은 1949년 10월에 건국과 동시에 중화민국의 국민당정부가 외국과 체결한, 이른바 ‘불평등조약’을 모두 무효화했다. 또한 중국에 잔존한 국민당정부와 외국의 모든 자본과 자산을 몰수했다.

현 정권의 대일 외교의 처리 방식이 공산당 식으로 진행되면서 우리 외교의 역량 발휘 기회와 국익 추구 노력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있다. 과거 공산정권은 이전 정권의 모든 외교적 행적(조약, 협정, 부채 등 포함)을 적폐로 규정하면서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적폐청산의 명분 아래 전 정권은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했다. 우리 대법원이 7년 동안 유보한 강제징용의 배상판결을 진행시키면서 1965년 한·일협정을 법리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을 노골화했다.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기업에 대해 국내에 있는 이들 기업의 자산매각을 허용했다. 지소미아는 공론화 없이 ‘졸속체결’됐다는 게 종료의 이유다.

탈냉전시기에 국가가 외국 기업의 자산을 몰수하거나 강압적으로 매각하는 행태는 거의 사라졌다. 왜냐면 자본주의시대에서 국가가 특정 국가의 국민이나 기업의 자산을 몰수·동결·매각하는 조치는 그 나라와의 관계가 매우 적대적이거나 전쟁에 임박했을 경우에만 행해지는 극단적인 외교 선택이기 때문이다. 우리정부의 이러한 선택은 대외 신인도와 전략적 신뢰에도 타격을 주기 때문에 외교적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결정이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미국의 동북아전략 구상의 기조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역내 국가 간의 동맹관계의 강화다. 여기서 한·일 양국 간에 군사적 동맹관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은 어떻게든 두 나라 간의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방법을 줄 곧 모색해왔다. 그리고 그 단초를 2016년 체결된 지소미아에서 어렵게 발견했다. 그런 미국에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강한 우려와 실망, 그리고 강력한 불만으로 표출되었다.

그런데 우리정부는 이 같은 결정이 한·미동맹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우리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미국이 원하는 '동맹국 안보기여 증대'의 기대를 충족시키면 오히려 한·미동맹이 강화될 수 있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이는 미국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궤변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악관, 국방부와 국무부의 외교적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미 군사외교안보전략 목표에 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불안감은 우리정부의 후속전략의 부재에 있다. 후속전략의 부재는 우리 외교가 취한 자세와 태도에서 입증되었다. 외교 갈등은 단기간에 몇 차례의 협의로 해결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사안은 예상보다 장기적인 협상을 요구한다. 따라서 외교협상에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수십년째 진행되는 중동의 평화협상과 북한 비핵화 협상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의 미·중 무역협상도 2년 이상 진행되고 있다.

우리정부의 말대로 한·일 간의 경제 갈등이 정치화·외교화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더 큰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일본과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의 외교적 노력은 일본에 고위급 인사를 두 번 파견하고 한 차례 실무급 회의에 참여하는 것에 불과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전과 이후 일본의 협상 제안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회피성 무반응 자세를 견지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일본에 대한 사전 대응 전략이나 후속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외교가 평화적 해결 수단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협의와 사후협의 등의 두 가지 트랙에서 전략적 사고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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