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인문학] 이제라도 '박제가'에 귀기울여야

2019-08-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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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신한BNPP자산운용 부사장
중상주의 실학자 박제가(1750~1805)는 케인스보다 앞서 "소비가 경제에서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근검절약하는 바람에 나라가 가난하다고도 짚었다. 박제가는 "우물을 계속 길어야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소비와 생산이 얼마나 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역설한 것이다. 그는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유는 해상무역"이라고도 했다. 박제가가 살았던 때를 감안하면 놀라운 식견이다. 사농공상을 없애고 천대해온 상인을 늘려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주장도 펼쳤다. 지금도 적극적인 통상과 탄탄한 내수 없이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고전학파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 장바티스트 세는 박제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소비보다는 공급에 초점을 맞추었다. 소비를 강조한 케인스는 박제가에 비하면 100년 이상 후대 인물이다. 애덤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펴냈다면, 박제가도 비슷한 시기인 1778년 '북학의'를 내놓았다. 그야말로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우리 역사는 박제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반대와 조롱에 부딪혔다. 물론 경제적인 가치에 지나치게 경도돼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말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도 박제가를 깎아내리는 데 한몫했을 거다. 결국 그는 노론 벽파로부터 미움을 사 유배형에 처해졌고 3년도 안 돼 생을 마감한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은 이제는 상식이다. 생산자는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많이 만들어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물론 이렇게 대량생산한 상품이 모두 소비돼야 생산자도 만족할 수 있다.

그래도 소비하려고 빚을 지나치게 늘린다면 곤란하다. 빚은 금세 닥칠 미래에 소비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한국은행은 얼마 전 소비자심리지수를 발표했다. 지수가 석달째 떨어졌다. 경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져서 그랬을 수 있다. 더 근본적인 요인도 꼽을 수 있다. 15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다. 이런 빚을 갚거나 이자를 물면서 소비할 여력이 있을까. 그러려면 소득이 올라도 많이 올라야 한다. 요즘 가계부채 증가율이 2017년까지 3년 평균(10.2%)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소득 증가율보다는 한참 높다.

주식시장은 얼마 전 기준금리 인하에도 시큰둥했다. 부동산시장에서만 기대감이 커졌다. 실물경기를 부양하려고 푼 돈을 또다시 부동산시장에서 빨아들인다면 이제는 정말 희망이 없다는 걱정도 든다.

정부가 '돈길'을 잘 챙겨야 한다. 부채가 많은 가계가 빚을 줄이거나 여유가 있는 가계가 소비를 늘리면 혜택을 주어야 한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보다는 부채를 줄여 유효수요를 살리는 게 낫다. 지금도 박제가처럼 본질을 꿰뚫어 보고 창의적인 제안을 내놓는 경제학자가 많다. 당파나 이념을 떠나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인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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