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제9호 태풍 '레끼마'의 간접 영향으로 온종일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유해란(18)에게는 잊지 못할 운수 좋은 날이었다.
11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반기 개막전인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최종 3라운드. 태풍의 영향으로 경기가 중단된 제주 오라 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는 무기한 대기 중인 선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강한 비바람으로 경기 진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유해란의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울렸다. 3라운드 취소 문자였다. 주위에서 축하의 메시지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기 취소됐다던데? 그럼 너 우승이야!” 유해란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생각도 없었다”며 어리둥절했다.
유해란은 행운의 생애 첫 우승컵을 덜컥 품에 안았다. 대회가 악천후로 54홀 대신 36홀로 축소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유해란은 올해 5월 KLPGA에 입회했지만, 아직 정규투어에 뛸 자격은 없었다. 드림투어(2부)에서 뛰고 있던 유해란은 이 대회에 초청선수로 나서 우승상금 1억6000만원을 받았고, 올 시즌 남은 KLPGA 투어 출전은 물론 내년 시즌 풀시드권까지 손에 넣었다.
올 시즌 초청선수 우승은 유해란이 처음이다. 하지만 단지 운이 좋아 우승을 거둔 건 아니다. 유해란은 탄탄한 기본기를 닦은 유망주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리스트로 3년간 태극마크를 달았고, 지난달 25일과 지난 1일 드림투어에서 2주 연속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까지 우승을 차지하면서 3주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유해란은 176㎝의 장신으로 드라이버로 260m를 보내는 장타력에 정확한 아이언 샷까지 갖췄다.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도 또 한 명의 스타 탄생 예감을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승이 아직 믿기지 않은 유해란은 “프로 데뷔한지 얼마 안 돼서 빠른 시기에 우승을 하게 돼 정말 영광인 것 같다”며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우승하자는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열심히 배우자는 마음이었는데 우승을 하게 돼 기쁘다”고 수줍게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는 “내년이 루키 시즌이라서 목표를 신인왕으로 잡았다. 지금 당장은 아무 생각이 없다. 내년에 신인왕에 도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마지막 날 역전 우승을 꿈꿨던 김지영2은 8언더파로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했다. 고국 나들이에 나선 ‘골프 여제’ 박인비는 4언더파 공동 8위로 ‘톱10’에 이름을 올렸고,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은 3언더파 공동 13위로 올해 첫 국내 대회를 마감했다. 상반기에만 4승을 수확한 최혜진은 2언더파 공동 17위를 기록했고, 디펜딩 챔피언 오지현은 컷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