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으로 원화 가치는 6월 말 대비 5.0%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54.7원에서 1214.9원으로 60.2원 상승한 것이다.
원화 가치 하락폭은 경제 규모가 큰 신흥시장 10개국 중 3번째로 컸다. 이 기간 한국 원화보다 하락폭이 큰 통화는 아르헨티나 페소화(-6.6%)와 남아공 랜드화(-6.3%)였다.
미·중 무역분쟁이 신흥국들의 통화가치 하락 배경이다.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부과 발표, 위안·달러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은 '포치(破七)', 중국에 대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이 잇따른 결과다.
신흥국 통화 중에서도 유독 원화 가치가 많이 떨어진 것은 미·중 무역분쟁에 일본의 수출규제 등 다른 악재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무역 의존도가 37.5%로 주요 20개국(G20) 중 3번째로 높은 데다, 주요 교역국이 미국과 중국이다. 가뜩이나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 환율이 급등했다.
한은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원화 약세에 대한 기대감이 이어졌다"며 "여기에 덜 완화적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회의 결과, 미·중 무역갈등 심화 등으로 환율이 대폭 상승했다"고 말했다.
환율은 하루에만 장중 20원 급등했던 '검은 월요일(지난 5일)' 이후 다소 안정되는 모습이지만, 당분간 하락보다 상승 압력을 더 크게 받을 전망이다. 상황에 따라선 달러당 1250원 가까이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박스권에서 움직이겠지만, 다른 악재가 터질 경우 금세 튀어 오를 수 있는 상황"이라며 "1245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에서 고착화해 상승 쪽으로 기울면 외국인투자자는 물론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자금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환율이 더 오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2017년 이후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달러화 자산에 대한 선호가 확산하고 있는데, 최근 불안한 대내외 여건들이 이를 자극하는 것 같다"며 "채권뿐 아니라 국내 증시 부진에 따른 해외주식펀드나 직접투자가 증가세"라고 말했다.
이들 투자금은 기관과 달리 '환 오픈(헤지를 하지 않은 상태)'으로 거래돼 환율 상승 요인이라고 전 연구원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