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독립 코리아] 위기의 반도체 업계 "52시간 근무 일시 완화해 달라"

2019-08-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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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규제대응 토론회…"슈퍼호황에 국가별 다변화 늦어"

보호무역 기류 속 기업 홀로 역부족…국가적 지원 시급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공동 토론회 [사진=백준무 기자]

"지금은 완전히 비상상태다. (일본 정부가 수출을 규제한) 핵심 소재 3개 개발이 시급한데 일시적으로라도 반도체 업계의 주 52시간 근무제를 예외해줄 수는 없나?"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7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 기조강연을 통해 이같이 되물었다. 반도체 업계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과학기술계 3대 기관이 긴급 개최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국가경제 전반에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대책 마련을 위해 열린 것이다.

박 교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글로벌 정보통신(IT) 시장의 무역환경이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 완전히 전환됐음에도 그동안 우리가 인식을 하지 못했다"며 "반도체 업계가 지난 3년간 슈퍼 호황을 누리면서 착시 현상을 겪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한국 반도체 업계가 소재·부품의 공급에 있어 국가 다변화에 안일했기 때문이라는 게 박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이 협력업체 다변화를 계속 추진해 왔지만 국가별 다변화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으로부터 50% 이상의 소재를 수입하던 국내 업계는 발빠른 재고 확보 및 벤더 다변화를 통해 반년 만에 수급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일본의 타 업체로 공급선을 바꾸는 데 치중하면서 정작 국가별 다변화는 이루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전히 한국 반도체 업계는 극자외선(EUV) 공정용 포토 레지스트의 90% 이상, 고순도 불화수소의 42% 이상을 일본 한 나라에서 수입 중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사진=백준무 기자]

그는 대기업에 단순히 국산 소재를 쓰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국내 소재·부품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 산업에서는 세계 1위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소재나 부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급박한 만큼 한 국가에서 70% 이상의 비중을 수입하는 품목만이라도 우선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박 교수는 짚었다. 국산화가 어려운 경우 필요에 따라서는 해외 소재·부품 기업의 인수합병도 공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소재·부품 산업의 중장기적 육성을 위해 박 교수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굴기를 이룬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혼자서는 헤쳐나가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그동안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은 대부분 중소 소재·부품 기업에 지원됐으며 그마저도 쭉 감소세였다"면서 "정부와 국회의 '대기업에 혜택이 가서는 안 된다'라는 인식 때문에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반도체 업계의 R&D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한편 대기업 또한 국산 소재가 최고 수준에 도달할 경우 과감하게 이를 공정에 투입하는 방식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정부를 향해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철강 분야로 이뤄지고 있는 국가 핵심기술 지정 제도도 소재와 부품 분야로 넓혀야 한다"며 "중소기업들이 개발 단계에서부터 대기업과 함께 협업할 수 있도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용 중인 것과 동일한 수준의 설비를 갖춘 한국형 테스트베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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