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얼어붙은 주식시장 투자심리가 더욱 움츠러들겠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미·중 무역분쟁이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도리어 꼬였다. 이미 불안한 증시에는 또다시 김빠지는 소식이다.
◆미·중 환율전쟁에 주가 변동성 큰 장세 지속
주식시장을 떠받쳐온 외국인과 개인은 빠져나가고 있다. 시장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이날 외국인과 개인은 저마다 6074억원과 4413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특히 외국인은 5거래일 누적으로 1조3742억원을 순매도했다. 반대로 기관은 이날 하루에만 1조323억원을 사들였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일본 이슈에 더해 미‧중 무역갈등도 다시 격화되면서 단기적인 주가 충격이 더욱 커질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하나금융투자 글로벌리서치팀은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당분간 변동성 큰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보았다. 국내 주요 증권사가 내놓은 코스피 예상범위 하단(지지선)은 1900선 안팎이다.
한‧일 갈등뿐만 아니라 미·중 무역분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추가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1994년 빌 클린턴 정부 이후 25년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얼마 전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추가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이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은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중국은 추가관세에 대응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해서도 반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그에 따른 환율전쟁 우려로 뉴욕증시는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90% 빠졌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2.98% 떨어졌다. 나스닥 지수는 3.47% 추락했다. 3대 주가지수가 나란히 올해 들어 최대 낙폭을 기록한 셈이다.
국제유가는 비교적 큰 폭으로 내렸다. 9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7%(0.97달러) 내린 54.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다른 아시아 주식시장도 약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지수 0.65%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 항셍지수, 대만 가권지수는 각각 1.80%와 1.13%, 0.27%로 거래를 마쳤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과 동일한 1215.30원에 마감했다. 환율은 한 달 남짓 만에 40원 넘게 올랐다.
일부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250원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환율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나아가 경제전반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김두언 KB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만큼 원·달러 환율이 125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했다.
◆미·중 무역갈등에 안전자산 금값 '쑥쑥'
그래도 안전자산인 금값은 치솟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환율 부문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안전자산인 금값이 1500선을 눈앞에 뒀다.
5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8월물 금은 전 거래일보다 온스당 1.3%(19달러) 오른 1464.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3년 5월 이후 6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안전자산인 채권가격도 오름세다. 갈수록 커지는 경기 걱정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할 상황에 놓여서다.
전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88%포인트 하락한 1.172%에 마감했다. 2016년 7월 6일(1.203%) 기록했던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국고채 10년물도 0.097%포인트 내린 1.252%로 장을 마감했다. 이 역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외에도 초장기물인 20년물(1.259%), 30년물(1.248%)도 1.2%대까지 내려왔다.
구혜영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악화되고 있는 대외 여건이 수출 및 성장 부진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은 만큼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시장의 압력도 커질 것"이라며 "채권 등 안전자산에 대한 강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