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1930년대 군산…'딴스홀'엔 독립의 열망이 가득했다

2019-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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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풍경, 맛있는 음식만 있는 여행을 즐기는 시대는 지났다. '테마'가 있어야 여행의 깊이가 깊어진다. 테마여행의 범주는 광범위하다. 최근 SNS에서 유행하는 인증샷 여행도,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힐링하는 식도락 여행도, 훌륭한 테마여행이다. 

지역 자체가 훌륭한 '테마 여행지'가 되는 곳도 있다. 전북 군산이 그렇다. 1930년대 시대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군산의 골골샅샅을 훑어보는 그 시간. 여운은 짙고, 감동은 깊다.

군산은 전주, 부안과 함께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가 선정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중 ‘시간여행 101’권역으로 묶인 곳이기도 하다.

관광공사는 각 지역의 열정 있는 관광 사업자들과 연계해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갖추고 ‘평화역사 이야기 여행’, ‘남도 맛 기행’, ‘중부내륙 힐링 여행’, ‘남쪽빛 감성 여행’ 등 각각 다른 10개의 주제와 이야기로 권역을 지정해 운영 중이다.

◆근대소설 <탁류> 배경으로 들어가는 재미 쏠쏠
 

일제강점기 무역회사였던 미즈상사는 현재 미즈커피가 됐다.[사진=기수정 기자]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일본식 건물과 가옥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아픈 흔적을 남겨놓았다.

우리는 '치욕'을 이유로 이런 흔적들을 지우려 애쓰기도 했지만, 요즘엔 이런 아픔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군산도 마찬가지다. 일제 시대 지어진 건축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역을 '근대문화유산거리'로 지정했고, 이곳은 이제 군산 여행 시 필수 답사 코스가 됐다.

​군산의 원도심 근대문화유산거리는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의 대부분이 보존돼있는 덕에 군산시는 탁류의 배경지를 탐방하는 걷기 코스 '탁류길'을 조성,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역사에 대해 배우고, 여행의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했다. 군산 여행 대부분의 시간은 아마 이곳 탁류길 위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899년 강제 개항한 ​군산은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933년 우리나라 총 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이곳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돈이 풀리기 시작하자 전국에서 엄청난 사람이 군산으로 모여들었고,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인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는 갑자기 2~3층의 일본식 건물들이 들어섰고, 일본은행과 요정, 청요릿집, 인력거꾼이 넘쳐났다.
 

근대역사박물관 전경[사진=기수정 기자]

탁류길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된다. 어수선하던 해망로 일대는 2011년 군산 근대문화관이 개관하면서부터 예쁜 거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군산의 근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이곳의 인기 공간은 1930년대 군산에 있던 건물을 복원한 근대생활관이다.

군산역, 영명학교, 야마구치 술 도매상, 형제 고무신방, 홍풍행 잡화점 등 당시 군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놓았다.
 

근대건축관으로 탈바꿈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사진=기수정 기자]

근대역사문화관을 빠져나와 옛 조선은행과 일본 제18은행을 만났다. 옛 조선은행은 <탁류>의 여주인공 초봉의 남편, 고태수가 근무하던 곳이다. 고태수는 이 은행 당좌계에서 근무했다.

​일본 제18은행은 나가사키(長崎)에 본점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대부업을 하며 인천과 군산 등에 지점을 차려 성업했다고 한다.

조선은행은 근대건축관으로,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근대미술관으로 각각 재탄생해 여행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장미동 곡물 창고는 현재 장미갤러리로 바뀌어 예술작품을 전시 중이다.
 

옛 군산세관 전경[사진=기수정 기자]

잠시 걸으니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건축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역사, 한국은행과 더불어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불리는 옛 군산세관과 세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인문학 카페 정담이다.

초봉이와 아버지 정주사가 서천에서 군산까지 똑딱선을 타고 와 내렸다는 째보선창 터와 일제 수탈의 현장이었던 뜬다리 부두(부잔교)도 여전히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다.

흐리고 탁한 탁류처럼 부조리와 만행이 흘렀던 일제강점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듯 머릿속에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과 동국사, 고우당 등까지 6㎞에 걸쳐 이어지는 탁류길을 모두 둘러보는 데는 102분이 걸렸다. 그저 천천히 걸으며 배우고, 깨닫는 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 되었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군산에 딴스홀을 허하라!
 

일제강점기 문화말살 정책에 맞서 군산의 ‘딴스홀(댄스홀)’에서 식민지배에 ‘춤’으로 저항한다는 내용의 '군산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매주 토요일(마지막주 제외) 공연한다. [사진=기수정 기자]

군산세관 앞을 지나던 중 카페 정담 입구에 서있는 공연 알림 입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군산에 딴스홀을 허하라'.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졌고, 정담으로 들어갔다. 

일제강점기 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군산의 ‘딴스홀(댄스홀)’에서 식민지배에 ‘춤’으로 저항한다는 내용의 공연 '군산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1937년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모티프로 삼아 공연을 기획했다.

때는 바야흐로 1930년대. 군산의 한 딴스홀에는 서양식 댄스를 배우려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넘쳐났다.

삼삼오오 모여 신나는 음악에 맞춰 현란하게 춤을 추던 그때,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막이 찢어질 듯 울려대는 그 소리에 춤을 추던 모던보이, 모던걸들은 금세 사색이 된다.

“딴스홀을 폐쇄하겠소.” 일제의 강압이 시작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퇴폐를 조장한다는 이유였지만 속뜻은 달랐다. 딴스홀을 폐쇄하고 이곳을 쌀 수탈 창고로 활용하겠다는 시커먼 속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신나게 춤을 출 자유가 있습니다. 딴스홀을 허해주십시오.”

일제의 문화말살정책,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딴스홀에 출입하던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군산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제목으로 서명운동에 돌입, 딴스홀 지키기에 나섰다.

일본군에게 짓밟혀가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서명운동은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이들은 일제의 압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딴스홀을 지키기 위해 더욱 신나게 춤을 췄다. 사실 이곳 딴스홀이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기에, 더더욱 이곳을 지켜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만의 문화독립운동은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문화말살 정책에 맞서 군산의 딴스홀에서 ‘춤’으로 저항하는 신나는 연극공연에 관객들은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되어 함께 춤을 추었고, "군산에 딴스홀을 허하라"고 외치며 서명운동에 참여도 했다. 울컥했고,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다. 

30분가량 이어지는 공연시간 동안 관객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했다.

배우는 물론이고 관람객까지 다 함께 공연을 보며 ‘딴스’를 추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보니, 시대의 어려움에도 웃음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 시절,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암울한 시기였던 1930년대에도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공연, '군산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마지막 주를 제외한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7시30분 2회에 걸쳐 펼쳐진다. 

군산의 근대 역사와 문화를 잘 살린 대표적인 공연으로 성장한 덕에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관광콘텐츠 공모에 선정된 이 공연은 군산시의 극단 '둥당애'와 협력해 제작했으며, 군산의 대표적 관광지인 근대박물관 거리 투어와 체험, 숙박 등과 결합했다. 

특히 '펀빌리지 협동조합,' 인문학 창고 정담 카페 등과 협력해 군산의 대표 공연관광 프로그램으로 성장 중이다. 

 

근대역사박물관 내에 있는 근대생활관에는 1930년대 당시 군산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근대역사박물관 내에 있는 근대생활관에는 1930년대 당시 군산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장미갤러리로 운영 중인 장미동 곡물 창고[사진=기수정 기자]

장미갤러리 앞에 전시된 채만식 소설 <탁류>의 등장인물들[사진=기수정 기자]

군산의 대표 명소가 된 초원사진관[사진=기수정 기자]

탁류길 코스에 속한 신흥동 일본식 가옥 전경[사진=기수정 기자]

동국사 역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사찰이다.[사진=기수정 기자]

일제 수탈의 현장이었던 뜬다리부두(부잔교)[사진=기수정 기자]

일제 수탈의 현장이었던 뜬다리부두(부잔교)[사진=기수정 기자]

'군산의 딴스홀을 허하라' 공연 모습[사진=기수정 기자]

'군산의 딴스홀을 허하라' 공연을 통해 열연하는 배우들[사진=기수정 기자]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 '군산의 딴스홀을 허하라'[사진=기수정 기자]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 '군산의 딴스홀을 허하라'[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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