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이 경제전과 안보전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우리 국민들의 분노는 들끓고 있고, 혐일과 친일의 흑백논리는 마지노선을 넘어 치킨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1960년대 초 박정희 군사정권은 ‘조국의 근대화’라는 혁명공약 실천을 위해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앞세워 온 국민을 산업화 대열에 참여시켰다. 그 과정에서 한·일 양국 간의 해묵은 갈등과 숙제는 1965년체제(한일기본조약과 부속협정)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결하였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안보형 국가, 발전형 국가, 민주화 국가, 그리고 복지형 국가 순으로 진화해 가는데, 당시 군사정권은 안보형 국가와 발전형 국가를 동시에 추구했다. 이런 과정에서 대대적인 건설자금과 기술이 필요했고 민족의 자존심은 상하지만 과거의 불편한 관계를 잠시 묻어두고 일본의 경제지원을 받는 정치적 타협점을 선택했다.
필자는 현재의 한·일 간 갈등의 이면에는 일차적으로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있다고 본다. 둘째는 정치적으로 그동안 일본의 방패막이가 되어 왔던 적대적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되면 남북경협을 통해 한국이 동북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확대되고 일본의 공간은 잠식되어 간다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철저한 도광양회를 통해 경제의 대국화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군사 대국화를 지향하고 있다. 미국의 함포외교로 개항을 한 일본은 하급무사들의 결기에 의해 메이지유신을 이끌어내 굴욕의 근대 역사를 극복하고 제국화하였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중화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제국화는 일본과 중국의 원대한 국가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우리의 핵심 이익은 결국 자강(自强)을 목표로 부강(富强)한 국가가 되어 품위 있는 국격(國格)을 갖추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격을 만들어 가려면 처절한 자기성찰을 통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교한 로드맵이 요구된다. 현재 우리에겐 국민이 수용할 만한 국가 비전의 제시가 필요하다.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헌하여 전쟁 가능한 국가를 만들어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중국도 중국몽이나 인류운명공동체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도 나름대로 국가 로드맵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을 상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형국에서 남남갈등만 고조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한·일 갈등의 이면에는 한국 국민들의 이념적 남남갈등을 이용해서 한국을 심리적으로 붕괴시키겠다는 일본의 전략적 의도가 숨어 있다. 남남갈등은 외부 세력들에 의해 항상 표적이 되었다. 일제치하에서 일제에 부역했던 기득권층과 독립운동 세력의 대립이 그랬고, 민주화된 시대 이후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그랬다. 남남갈등은 해방 후 새판을 짜는 과정에서 아주 극명하게 나타났고, 그 뿌리가 지금도 저변에 깔려 전환기의 시대를 역행시키고 있다. 한·중관계도 한·일관계도 한·미관계도 모두 우리에게 쉽지 않은 이유는 대내적인 남남갈등의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남남갈등을 극복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모든 국민들이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 있는 국론의 통일과 극일의 수단과 방법이 나와야 한다.
손자는 병법 군형(軍形)편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고, 이길 수 있다면 승리의 요인은 적에게 있다(不可勝在己, 可勝在敵)’고 말했듯이, 우리가 상대를 이기려면 적전분열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