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확산하면서 총파업과 교통 대란까지 발생했다.
홍콩 내 반중·친중 세력 간 갈등이 치킨 게임 양상으로 접어든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중국 수뇌부의 비밀 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혼돈의 홍콩, 강대강(强對强) 대치 지속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이날 항공·금융·교통·외식·언론 등 각계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이뤄졌다.
홍콩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재야 단체는 최소 50만명 이상이 동참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번 파업은 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됐다.
교통업 종사자들이 대거 파업에 참여하면서 홍콩에서는 교통 대란이 발생했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은 활주로 2곳 중 하나를 폐쇄했고, 수백 편의 항공편이 결항됐다. 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의 경우 출발편 70편, 도착편 60편 이상이 취소됐다.
14개 공항 고속철 노선 중 8개는 운행이 전면 중단됐고, 나머지 6개 노선도 일부 구간에서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 시위대는 다이아몬드힐 등 4개 지하철역에서 운행 방해에 나서기도 했다. 이 때문에 출근 시간 내내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시위대는 총파업과 교통 대란 등이 홍콩의 친중 행정부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전체 시민의 동참을 호소하는 중이다.
위기감을 느낀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 세력을 비판했다.
람 장관은 총파업에 따른 비상 체제를 가동 중이라며 "시위대의 행위는 정치적 요구를 넘어선 국가 주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과 공공시설을 공격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을 협박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라며 "홍콩의 안정과 번영을 파괴하고 700만 홍콩 시민의 민생이 대가를 치를 만한 지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시위 세력에 대한 성토를 이어가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면 논평을 통해 "일부 시위대의 폭력 행위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폭도들이 바다에 던진 국기를 시민들이 다시 게양하고, 폭도들이 공격한 경찰을 시민들이 지원하고 있다"며 "폭도들이 외세를 끌어들였지만 시민들은 외국 영사관 앞에서 항의했다"고 언급했다.
홍콩 내 친중과 반중 세력 간 갈등을 부추기며 시위대가 민의를 대변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환구시보는 "폭력은 폭력일 뿐"이라며 "법치 앞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궤변도 무의미하고 민생 앞에서는 어떤 선정적 구호도 혐오스럽게 느껴진다"고 시위 세력을 비난했다.
반중 시위대와 친중 집권 세력 간의 갈등이 브레이크 없이 충돌하는 치킨 게임 양상을 보이면서 중국 중앙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 수뇌부가 비밀리에 모여 주요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시작되면서 홍콩 시위 사태와 관련해 어떤 결단을 내릴 지 관심이 쏠린다.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3일 천시(陳希) 공산당 중앙조직부장과 쑨춘란(孫春蘭) 국무원 부총리 주재로 베이다이허에서 각계 전문가 58명이 참여하는 좌담회를 열었다고 전했다.
매년 이맘때 개최되는 연례 행사로, 베이다이허 회의 개막의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베이다이허 회의에는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현직 지도부는 물론 전직 지도자들까지 참석해 다양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미·중 무역전쟁과 함께 석 달째 지속 중인 홍콩 시위 사태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국무원이 홍콩 내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것은 지난 1997년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은 뒤 22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미 강경한 목소리를 낸 만큼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번복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군 투입을 포함한 초강경책이 현실화할 지 여부인데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대신 홍콩에 대한 경제적 지원으로 민심을 다독이고, 시위 세력 내 분열을 조장하는 등의 대응책이 나올 수는 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미국 등 서구 사회의 견제와 국제적 이미지 등을 감안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과 홍콩 간의 뿌리깊은 불신이 이번 사태의 원인인 만큼 단기간 내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