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과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효력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이 자국 동부시간 기준 2일 0시(한국시간 2일 오후 1시)를 기해 INF에서 공식 탈퇴한 데 뒤이은 것이다.
INF는 조약 체결 당시까지 생산됐던 사거리 500~1000km의 단거리와 1000~5500km의 중거리 지상 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을 모두 폐기하고 향후 해당 범주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조약이다.
상대적으로 방어 여력이 큰 해상·공중 발사 핵미사일과 달리 목표물 도달 시간이 몇분에 불과해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지상 발사 핵미사일을 금지함으로써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약이었다.
미국은 특히 러시아가 조약에 저촉되는 사거리 2000~5000km의 중거리 순항미사일 9M729(나토명 SSC-8)를 개발해 2017년부터 실전 배치했다며 이를 폐기하지 않으면 INF에서 탈퇴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9M729 미사일이 재래식 탄두는 물론 핵탄두를 탑재하고 몇분 안에 유럽 도시들에 도달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어 유럽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9M729의 사거리가 480km로 INF 적용 대상이 아니라면서 미국이 INF 탈퇴를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에 '가짜 혐의'를 씌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는 오히려 루마니아에 이미 전개됐고 폴란드에도 배치되고 있는 미국의 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속한 발사대 MK-41이 요격 미사일뿐 아니라 사거리 2400km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면서 미국이 INF를 위반하고 있다고 역공했다.
러시아는 또 공격용으로 이용될 수 있는 미국의 대형 무인기와, MD 시스템 요격 시험에 이용되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형의 '미끼용 표적 미사일'도 INF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상호 비난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INF를 살리기 위한 양국의 몇차례 협상은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조약 폐기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에 따라 군사 전문가들은 당장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을 겨냥한 새로운 중·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러시아가 곧바로 맞대응에 나서면 심각한 핵 위기가 고조되고 최악의 미·러 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군비통제협회 대릴 킴볼 사무국장은 미국 국방부가 이미 이달 말에 INF에서 금지했던 종류의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 비행 시험을 실시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의 유력 군사전문가인 블라디미르 예브세예프는 "INF 폐기로 미국이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을 일본과 유럽국가에 배치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러시아도 전략미사일과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같은 전술미사일 배치로 맞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