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해병대 IBS훈련... 너는 누구에게 한 번 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2019-07-3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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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최전방, 'Fight Tonight'

IBS는 타는 게 아니라 머리에 이는 것

필승! 886기입니다(ft. 선배니까 살려줘)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해병대 제2사단(백경순 소장: 해사 42기) 짜빈동대대 IBS(Inflatable Boat Small) 훈련을 받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가슴 한켠에 여전한 뜨거움으로 되뇌인다. 연탄재처럼 자신의 몸뚱아리를 태워준 14팀원(상병 권병록 1237기 상장대대, 병장 박병규 1230기 13대대, 상병 김경우 1235기 13대대, 일병 양해민 1240기 13대대, 상병 이준호 1236기 13대대, 하사 강진영 부학1기 13대대, 조교: 하사 조용석 377기)에게 북받쳤고, 20살 가량 어린 후배들에게 진한 전우애를 느꼈다.

북한과의 최단거리가 1.3km에 불과한 해병대 제2사단 짜빈동대대 IBS 훈련,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시작한다.
 
 

헤드 캐링(Head Carrying)으로 곡소리가 나기전 대나루 포구 상륙기습훈련장 모습. 오와 열이 맞춰진 고무보트들이 인상적이다. [사진=해병대 제2사단]



◆서부전선 최전방, 'Fight Tonight'... "이러려고 일찍 오라 했나"

"으으으..." 25일 경기도 김포 대나루 포구 상륙기습훈련장이 신음소리로 채워진다. "으드득" 나도 이를 꽉 깨문다. 이날 북한은 신형 탄도 미사일을 쐈고, 오전 8시 43분 난 PT체조 10번 '새우튀기'를 시작했다. "허리 듭니다. 머리 땅에 닿지 마" 단상 위 교관 목소리가 날카롭다. 정신을 부여잡는다. "난 886기다. 선배다. 창피를 당하면 안 된다" 안 쓰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18번까지 있는 PT체조. 이제 10번이다. 아득하다.

 

새우튀기로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말끔한 얼굴, 깨끗한 전투복과 전투화가 훈련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사진=해병대 제2사단]
 

머리가 지면에 닿았다. 온 몸의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고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자신과의 싸움은 늘 어렵다. [사진=해병대 제2사단]


PT체조 자세가 맘에 안들었는지 교관은 새우튀기가 한창인데 군가인 '부라보 해병'을 지시한다. '귀신잡는 용사 해병 우리는 해병대'로 시작되는 부라보 해병을 한 목소리로 외친다. "귀신잡는... 해병... 해병대... 젊은 피가... 정열... 막으랴" 발음은 뭉개지고 가사는 생략된다. 머리는 지면에 가까워지고 새우튀기는 끝날 줄 모른다. "머리가 땅에 닿지 않아야 '새우튀기'가 끝납니다"는 교관의 목소리. 욕처럼 속으로 내뱉었다. "새벽 5시에 집에서 일어나 훈련장에 왔는데 이러려고 일찍 오라고 했냐!"

◆IBS는 타는 게 아니라 머리에 이는 것

본 훈련이 시작도 안했는데. 몸풀기인데 다리가 풀렸다. 심신미약으로 열외를 하고 싶은데 눈 앞에 시커먼 140㎏ 고무보트때문에 정신줄이 놓아지지도 않는다. 헤드 캐링(Head Carrying) 훈련의 시작. "보트 무릎 들어! 보트 어깨 위로! 보트 머리 위로!" 강진영 팀장의 순차적 지시에 팔, 어깨, 머리가 분명히 본인 것이라는 '140㎏ 자각'이 선명하다.

 

비장한 표정. 140㎏ 무게가 선명하게 자아를 깨운다. 그런데 왜 '난 누구, 여긴 어디'를 생각하고 있을까. [사진=해병대 제2사단]



해병대 선배니까.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니까. 고무보트 맨 앞 2번 도수를 지원했다. 몰랐다,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가파른 경사의 산악 지형을 이토록 오래 오를 줄은. 입이 열리고 눈은 감긴다. 신기하다. 분명 머리에 고무보트를 올렸는데 눈꺼풀이 무겁다. 힘내자 악을 쓸 수록 줄줄줄 침이 흐르고 감긴 눈을 질끈거릴 때마다 짠내가 풍긴다. 경솔했다. 이전 중앙소방학교 농연훈련때 얻은 교훈이 PT체조로 원상복구됐나보다. 역시 인간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애꿎은 원망. 1번 도수 양해민 일병, 키가 안 맞는다고 선두에 서서 생명줄을 잡았으면 제대로 끌어달란 말이야. 너 혹시 복수한다고 보트 아래로 누르고 있냐. [사진=해병대 제2사단]
 

줄줄줄 흐르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저 액체와 늘어진 침을 보라. 짠내가 폭팔한다. [사진=해병대 제2사단]



헤드 캐링 훈련은 팀원들 간의 화합과 단결심 함양이 목적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고무보트의 무게가 쏠려 팀원들이 다칠 수있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데 1번 도수 양해민 일병의 갈라지는 쇳소리 외침이 들린다. "키가 맞지 않습니다." 즉, 2번 도수인 김정래 '너' 때문에 무게가 쏠려 너무 힘들다는 얘기다. 나 하나쯤이야 보다 무서운 '키 차이'. IBS 훈련의 화합과 단결심을 해치는 주적(主敵)임을 깨달았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목소리 크게 합니다" 조용석 14팀 조교가 팀원들의 힘을 짜낸다. 땀으로 가려진 눈 앞에 정상이 아른거린다. '끝이다'라는 기쁨도 잠시, 앞서 갔던 팀들이 '마라톤 반환점'마냥 돌아 나온다. 떠올랐다. "아! 정상은 찍고 내려오는 것이지." 왔던 오르막이 내리막으로 눈 앞에 펼쳐졌다. 오만상이 찌푸려졌다. IBS 훈련 기대효과 중에 '조직속에 개인주의적 갈등, 스트레스 해소 및 새로운 가치와 의미 부여'가 있다. 뭐라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필승! 886기입니다(ft. 선배니까 살려줘)

진저리 쳐졌던 헤드 캐링 훈련 후, IBS 페달링 선착순에서 우리팀은 3등을 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두 팀은 페달(보트를 젓는 노)에 밥을 먹는다는 말에 하루종일 굶은 나는 하얗게 불태웠다. 이후 실시된 기습특공을 위한 모터링 훈련에서는 여러 대형과 전술을 익힘과 동시에 고무보트에 부서지는 짠 파도에 귓방망이를 얼얼할때까지 맞았다. 
 

선착순 시작. 비장하다. 출발 신호와 함께 사력을 다해 페달링을 했다. [사진=해병대 제2사단]
 

 

선착순에서 3등을 하고 기뻐하는 모습. 편안히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하얀 이가 아래 위로 16개 이상은 보이는 듯 하다. [해병대 제2사단]



이날 훈련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새차게 내리던 비는 더욱 굵어졌다. 2사단 짜빈동대대의 정성스런 준비와 출구없는 훈련. 시커먼 하늘과 쏟아지는 비가 내 마음이다. 훈련 메뉴는 '뻘밭 참호 격투'. 10명의 팀원들이 고무보트 6대를 육각형으로 연결한 간이 뻘밭 링에서 온 몸을 이용해 상대를 밀어내는 훈련이다. 출구없는 훈련 지옥. 한발 한발이 푹푹 빠지는 뻘밭에 들어서서 만만한 해병이 누군가 탐색 중에 "우승팀에게는 포상휴가와 외출이 주어진다"는 조교의 말이 터진다. 본능적으로 상대팀을 향해 "필승! 886기입니다"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살고 싶었다. 보름은 족히 굶은 호랑이같은 날 것들이 '마흔살 먹은 선배부터 처리하자', 곧 덤벼들 표정으로 쏘아보는데 도리가 없다. '포상휴가'의 위력은 군대를 갔다온 이는 다 알고 있다.

 

고무보트에 신체 일부가 닿기만해도 탈락이기 때문에 조용석 조교가 본인의 군화 끝을 매의 눈의로 바라보고 있다. 마흔살에도 치솟는 승부욕에 밀려날 수 없었다. [사진=해병대 제2사단]


그러나 승부에 피가 끓었다. "열한 중대 화이팅"을 외치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준결승 진출이란다. 경기를 더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만상이 찌푸려졌던 헤드 캐링의 정상이 떠오른다. 또 경솔했다. 역시 인간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이어 치러진 준결승에서 키 183cm, 몸무게 100kg은 가볍게 넘을 것 같은 상대팀 헤비급 중사에 고이 접혀 던져졌다. 출구없는 지옥에서 드디어 해방이다. 던져지는 기쁨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승부욕에 불타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세요. [사진=해병대 제2사단]


해병대 IBS 훈련에는 계급과 명찰, 그리고 성별이 없다. 교관과 교육생의 구분만 있을 뿐 모든 장병은 정찰모에 붙은 번호로 불린다. 장교, 부사관, 병사가 아무런 구분 없이 평등하게 같은 훈련을 받는다는 의미다. 

백경순 2사단장이 외치는 'Fight Tonight'(오늘밤 싸우자)은 서부전선 사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계급과 명찰, 그리고 성별없는 IBS 훈련을 받아보니 군 내부의 성차별, 계급 갈등을 'Fight Tonight'하자는 뜻에도 적확하다는 개인적 소회가 들었다. '성인지 감수성'이 화두인 시대, IBS훈련이 '여군'이라는 말조차도 성차별임을 자연스레 교육하고 있는 셈이다.


 

19시간 만의 첫끼, 덩어리 밥 먹방 시전. [사진=해병대 제2사단]

먹방의 진정성은 식판 채 들이키는 국에서 나온다. [사진=해병대 제2사단]

 

◆IBS 훈련의 후유증

훈련을 다녀온지 3일 정도가 지나자 정수리 쪽 두피가 벗겨져 비듬이 떨어지고 있다. 잊을만하면 귓속에 들어간 뻘이 면봉에 묻어 나온다. 자랑도 아니고 더럽(The love)지만, 개인적 성취감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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