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한국, 국제중재 뭐가 겁나나

2019-07-2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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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



필자는 지난 16일 본지 칼럼('일본의 제재와 구한말 외교의 암운')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과 강대국의 반응이 구한말 때의 것을 연상케 한다고 썼다.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 전략이나 자세에서 어떠한 변화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정부와 여당의 구태의연한 대응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신친일’로 낙인 찍으려 들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지난 3주 동안 보여준 우리 정부의 외교적 대응은 무지, 무능력과 무대응 등 이른바 ‘3무(無)’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무지함은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오판한 데서 드러났다.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이 개인의 ‘반인권’적인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를 금하지 않기 때문에 소송이 가능하며 일본의 우리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수출규제조치가 우리의 사법권 침해라고 한다. ‘비엔나조약’, ‘국제조약’ ‘국내법’ 간의 공학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대국민 호소문으로 일본의 조치가 ‘정치문제에 경제적 보복’, ‘우리 경제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즉 우리가 잘나가는 것에 일본이 아니꼽다는 식으로 해석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겪을 경제적 어려움에 대비할 필요성을 국민 감정에 호소했다. 또한 미국에게 중재 요청을 막연하게 바라는 정부의 모습은 현재 국제정세와 미국 세계전략의 흐름 변화를 전혀 읽지 못함의 방증이다. 22일 WTO 일반이사회에 일본의 ‘만행’설명을 위한 통상전문가대표단을 보낸 모습은 구한말 시대 일제의 식민통치의 만행과 우리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보내졌던 일명 ‘헤이그 밀사’와 흡사해 착잡함을 금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WTO에 파견되는 우리 대표단에 응원을 하고 싶지만 ‘헤이그 밀사’의 결과가 재현될 가능성을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국제여론의 호소가 지략을 갖춰져야 하는데 그러한 단서가 보이질 않는다.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면 제대로 된 지략을 가질 수 없는 결과는 자명하다. 워싱턴으로 급파된 국가안보실 2차장의 브리핑에서도 지략은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지략이 있었다면 파견 이전에 세계여론에 총력전을 펼치면서 미국 인사들이 문제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았기에 우리 입장만 ‘잘 전달’하는 데 시간과 혈세를 낭비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정부의 무능함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무능함은 자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데서 극치에 이르렀다. 대내적 분열 책략은 기득권이 구한말 때부터 대외적 대응 능력의 무능함을 은폐하기 위한 전통적 술수다. 정부가 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순신을 언급하면서 죽창가가 나오고 급기야 매국, 친일, 이적, 애국 등과 같은 용어로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는 무능함을 대변하는 언사다. 이제는 비속어 수준의 ‘지레 겁먹고 (일본에) 졸지 말자’는 식의 저급한 표현을 청와대 소속인사가 여과 없이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작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진정 무엇인지를 모르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무대응적인 정부의 모습은 기업인뿐 아니라 국민들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조치가 있은 후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가진 우리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는 민관비상대응체제를 마련하고 기업이 난국을 극복하는 데 정부가 ‘최대한 뒷받침’을 제공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뒷받침’의 실질적인 조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일례로, 대내적으로 기업의 규제나 소득주도성장형을 위해 마련된 규제 등의 해소는 배제되어 보인다. 관련 산업의 주 52시간 근무제의 특별 완화뿐이었다. 대외적으로도 난관 타개를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않지 않다. 그저 미국에 매달리는 모습은 우리를 처량하게 만든다. (한국이) 자신을 성인으로 인정해달라고 (미국에) 조르면서 전시작전권의 이양과 국방자주권을 주장하지만 (중국과 일본과 같이) 옆집의 덩치 큰 놈들한테 맞으면 미국에 또 달려가니 말이다.

우리가 그러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세 가지 지략을 가지고 임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정정당당’하게 일본의 규제에 맞서야겠다. ‘촛불혁명’의 정부는 출범부터 국정운영의 철학으로 ‘정정당당’함을 내세웠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정정당당하면 두렵지 않아야 정상이다. 대통령부터 민정수석까지 모두 법학도 출신이다. 문제가 국제법의 것이든 국내법의 것이든 일본의 조치 이유와 근거가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처사이고 우리의 것이 정정당당하다면 WTO소송부터 일본이 말하는 국제중재까지 마다할 필요가 없다. 법리학적으로 시시비비를 따지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정당당하다면 국제중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연유로 이마저 회피하고 있다. 우리가 독도와 같은 영토분쟁문제에 있어 국제중재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것과는 속성과 본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독도는 실효적 지배의 문제로 결국 귀결되기 때문에 중재의 결과와 무관하게 우리의 것으로 존속한다. 일본이 무력으로 우리를 내쫓지 않는 한 실효적 지배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중재를 수용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성과 당위성이 자연스럽게 보장된다.

둘째, 정부가 제시한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국내 해법에서 부족한 2%가 채워져야 한다. 정부는 강제징용자들의 위로 방안으로 우리 기업의 출자를 통한 재단 설립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는 순서가 잘못되었다. 아니 주체가 잘못되었다. 정부가 주체가 되어야 하고 정부가 이런 운동을 주도해서 우선적으로 출자한 후 기업에 이런 좋은 뜻에 동참할 것을 권장해야 한다. 그러면서 한·일관계의 우호 증진을 위해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인하는 지략을 펼쳐야 한다. 한·일관계가 보편적 인류 가치의 기반에서 향상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이를 마다할 일본 기업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국의 원죄는 국민에게 불행과 아픔을 초래한 이에게 있다. 현 정권은 일본과 장기전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국민이 불행해지고 그 해결의 몫이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 결국 일본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면 이 모든 매국적 행위의 책임은 ‘3무’로 일관한 선임 정권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번 정권이 난국 타개를 위한 국민적 지지를 진정으로 원하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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