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돈 허공으로? 열도 흔든 '2000만엔'
일본 집권당인 자유민주당 소속이자 올림픽담당상 출신인 마루카와 다마요 후보는 지난 16일 도쿄에서 열린 참의원 선거 관련 개인 연설회에서 고령화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호(介護·환자나 노약자 등을 곁에서 돌보는 것) 대책 등이 절실한 상황에서 현 내각을 지지해야 기존 고령화 대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야권에서는 현 내각의 고령화·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가 "2000만엔(약 2억1800만원)이 없어도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 논란으로 불거진 '2000만엔 스캔들'을 비꼰 것이다.
일본의 연금은 후생연금(厚生年金)과 국민연금(国民年金) 등 두 가지로 나뉜다. 후생연금은 근로자로서 소득 기준으로 부금하는 형태여서 한국의 국민연금 개념이다. 국민연금은 한국의 기초노령연금과 비슷하다.
후생연금은 국적과 상관없이 자영업자 등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30시간 이상 근로하는 경우 급여에서 자동으로 차감된다. 2018년 기준 납세율은 9.15%다. 고용주도 직원 급여의 18.3%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부담이 적지 않다. 국민연금도 59세 이하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그간 높은 세율을 감당하면서도 세금을 부담해온 납세자들의 분노가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본이 전 세계에서 초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데다 저축률이 저조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수년째 기준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에 머무르면서 20%에 달했던 일본의 가계 저축률은 최근 몇 년간 3~4%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20대 인구 10명 중 6명은 아예 저축을 하지 못한다는 통계도 나온다. 연금만으로는 노후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불안감이 번지자 아베 총리는 "오해와 불안을 야기하는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즉각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부터 모아도 2000만엔 모으기는 어렵다"는 자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사라진 연금' 데자뷔? 경제 통제력 신뢰 상실 위기
연금은 아베 총리에게 악몽과도 같은 키워드다. 지난 2007년 이른바 '사라진 연금' 사건으로 정권을 내주는 아픔을 겪은 탓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5000만건에 달하는 국민연금 납부기록을 분실해 공분을 샀다. 연금 가입 기록을 정리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수천명의 연금 수급 권리가 소멸된 것이다. 연금 수혜자들인 노년층이 투표에 적극 나서면서 집권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여권에서는 이번 스캔들로 인해 제1기 아베 내각을 몰락시켰던 '사라진 연금'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아베 총리가 성난 민심을 발빠르게 수습하고 나선 것도 실각에 대한 초조함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아베 내각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불신감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아베 내각은 지난 1월에도 부정 통계 사건으로 한 차례 몸살을 앓았다. 후생노동성이 지난 15년간 근로통계의 데이터를 조작해온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근로통계는 종업원의 급여 추이 등을 파악하기 위해 임금과 초과근무 수당, 노동시간 등을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 정책의 근간이 되는 만큼 충격이 적지 않았다. 당시 아베 내각은 통계 부정 문제를 '제2의 사라진 연금'으로 규정, 사태 수습에 전력을 다했다.
특히 노후 자금 논란을 야기했던 이번 금융청 보고서와 관련해서도 주요 문구가 삭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을 속였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초안에는 '중장기적으로 연금 급부 수준에 대해 실질적인 저하가 예상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가 최종안에서 삭제됐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일본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로 인해 일본 불매 운동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일본 지방 소도시의 관광수입 하락 등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내부에서조차 이번 수출 규제가 무리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로 인해 한국 반도체 생산에 지장이 생기면 일본 가전제품 제조사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한국 기업이 반도체 소재를 분산 조달한다면 '일본 이탈'을 불러 장기적으로 일본 반도체 소재 분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