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참여 작가들은 지구 서식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생태적 지위를 새롭게 찾고자 한다. 전시는 정원의 식물과 곤충들, 깊은 숲속의 버섯과 미생물, 바다 속 문어,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소와 개, 인간 기술의 오랜 재료였던 광물과 같은 생명/비생명의 존재들과 감응하며 생태적 변화를 상상하며 구성했다.
전시는 ‘인간의 자연’과 ‘서식자’라는 주제로 나눠 구성했다. ‘인간의 자연’에서는 인간에 의해 확장되고 구성되는 자연이라는 주제 아래 백남준의 ‘사과나무’, ‘다윈’, 이소요의 ‘TV정원: 주석’과 윤지영의 ‘에라’, 아네이스 톤데의 ‘체르노빌 식물표본’, ‘갈랄리트’, ‘카본블랙’, 제닌기의 ‘선구체Ⅰ,Ⅱ’가 전시된다. 텔레비전을 환경으로 인식한 백남준의 미디어 생태학에서 시작해 목가적 자연 풍경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기록한 이소요의 작품,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철회할 것을 요청하는 아네이스 톤데의 작품을 거쳐 기술의 재료가 돼왔던 물질을 새로 감각해 볼 것을 제안하는 제닌기와 인간의 욕망과 기술 발전 사이에 균형 감각을 찾고자 하는 윤지영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를 통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운송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며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제안한다.
‘서식자’에서는 현대 생태학의 기원이 된 한정된 시스템으로서의 지구에 대한 성찰과 그곳에서 서식하는 서식자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박민하의 ‘대화77-08-12’는 달 탐사 이후 우주선 지구호로서의 한계를 인식한 인류가 타자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시작한 우주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것이다. 이어서 지구생태계의 오랜 서식자인 인간의 주거지, 도시 생태계의 이야기를 담은 리슨투더시티의 ‘장소상실’과 동물권에 대해 작업해온 조은지 작가의 신작 ‘문어적 황홀경’과 ‘봄을 위한 목욕’, ‘개농장 콘서트’를 함께 소개한다.
인류세를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시적 통찰과 감각을 보여주는 박선민의 영상 작품 ‘버섯의 건축’, ‘고속도로 기하학2’, 한반도의 멸종위기 식물의 서식처에서 소리를 채집해 미래의 도서관 목록을 만든 신작 ‘속삭임과 잠의 도서관’은 이미 다가와 있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변이를 만드는 ‘발효’ 작용에 주목해 이를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제안하는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의 ‘발효컬트’는 생태학을 정치나 경제와 같은 분과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으로 정의한 백남준의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백남준아트센터측은 “백남준은 1960-70년대 반문화운동의 시기, 청년들이 실행한 공동체 실험에 주목하며 젊은이가 젊은이에게서 배우는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그는 하나의 분과로 생태학을 규정하지 않고 하나의 세계관으로 생태학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고 기술혁명이 있는 곳에 새로운 세계관과 삶의 형식이 필요함을 강조했다”며 “생태학에 대한 백남준의 비전은 인간 행동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당신과 우리가 함께 ‘인류세’의 시대를 통과해 나갈 수 있을지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응답해주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