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적으로는 가파른 성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이 위기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 때문이다. 수십년 동안 지속된 인력 부족이 애니메이션 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협할 수 있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복스는 2일(현지시간)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저변에 놓인 참혹한 노동 현실을 지우고 있다"면서 "지나친 노동으로 번아웃 상태에 놓이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노동자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애니메이션이 추구하는 예술적 이상주의와 무자비한 산업구조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으며, (애니메이션 산업은)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애니메이터들을 착취하고 있다"면서 "상황은 심각하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이뤄진 중간단계 애니메이터들이 한 그림당 받는 보수는 200엔에 불과하다. 그러나 1개의 그림당 걸리는 시간은 최소한 1시간이다. 세밀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여서 그려야 하는 경우에는 4~5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아다치 디자이너는 “만약에 키 프레임 애니메이터가 된다고 해도 돈을 많이 벌기란 힘든 일이다. 만약 '진격의 거인'처럼 작품 자체가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노동시간도 지나치게 길다. 일본의 매드하우스는 노동법 위반으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거의 한달에 400시간을 근무했으며, 하루의 휴일도 없이 37일 연속 출근해야 했다. 2014년에는 한달에 무려 600시간을 일했던 애니메이터가 과로에 시달리다 자살한 적도 있다.
이 같은 무자비한 저예산 제작방식은 일본 만화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 시대부터 생겨났다. 1960년대 데즈카 오사무가 이끄는 애니메이션 회사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방송사 수주 시장을 휩쓸면서 제작 가격을 낮춰버린 것이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제작으로는 적자를 보는 대신, 캐릭터와 장난감 장사로 이익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때문에 결국 흥행 수익으로 버는 많은 돈을 제작사보다는 방송사나 게임회사, 장난감 회사가 가져가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때문에 제작사들은 수익 부족에 시달리며, 애니메이션 노동자들의 처우도 열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새로운 기회와 반전으로 등장한 것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최근 가열되는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 속 생존 수단 중 하나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들고나왔다. 에반게리온 같은 유명작들을 독점 서비스하면서 이용자들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넷플릭스의 접근은 수익성의 고민에 시달리던 일본의 애니메니션 제작사들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넷플릭스는 작품 제작을 위한 비용을 제작사에 직접 준다. 작품 내용에 대해 간섭도 받지 않고 제작사에 2차 창작물 활용 권한도 준다. 넷플릭스는 작품의 단독 방영권만을 가지거나, 2차 창작물 활용 권한을 제작사와 공유하게 된다.
과거 시스템 속에서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한 일본의 중소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수익 구조가 개선될 여지도 보인다는 것이다. 제작 환경이 개선되고 애니메이션의 국제적 배급에 따른 수익의 몫을 정당하게 나눠 받을 수 있다면 애니메이션 제작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도 개선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