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 방문 마지막 날인 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세계 각국과의 차세대 이동통신인 5G 협력을 강조했다. 시 주석이 공개석상에서 5G 문제를 거론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홍콩 명보는 9일 보도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함께 다원화된 세계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중국의 대외개방, 시장진입 완화, 공정한 시장경쟁 환경 조성 등의 노력을 강조하는 한편, 중국이 다자간 무역체제를 수호하고 경제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세계 각국과 5G 기술을 비롯한 새로운 과학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새로운 핵심경쟁력을 함께 키워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5G 강자'인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 조치를 내린 가운데 시 주석이 직접 나서서 세계 각국의 5G 협력을 강조한 것이란 분석이다.
이날 시 주석과 함께 포럼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아예 대놓고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비난했다.
러시아 스프투니크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해 "노골적으로 화웨이를 글로벌 시장에서 몰아내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를 "디지털 시대의 첫번째 기술 전쟁"이라고 평했다.
그는 신흥국들이 고속 성장으로 세계 경제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커지자 일부 서방국이 무역전쟁을 도발하고 금융패권을 추진하며 툭하면 일방적인 제재나 교육학술 교류 방해 등과 같은 부당한 수단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일방주의 행보를 맹비난하며 중국 '편을 들어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시 주석이 5~7일 러시아 방문을 통해 든든한 우군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거래 제한 금지 조치로 국제적 고립 리스크를 맞은 화웨이가 러시아의 첫 5세대(5G) 네트워크 구축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 중·러간 여러가지 경제 협력 방안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 기간, 중·러 양국은 경제무역, 에너지, 과학기술, 우주, 농업, 교육 등 분야에서 30개 가까운 협력문건에 체결했다. 중국 상무부는 양국 기업간 원자력, 천연가스, 자동차, 하이테크, 전자상거래, 5G 등 방면에서 체결한 계약액이 200억 달러가 넘는다고 밝혔다.
미국 CNN은 이를 두고 중·러가 양국간 우호를 과시함과 동시에 반(反)트럼프 전선을 구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앞둔 중국은 이 같은 시선을 우려한 듯, 중·러간 협력이 미국을 겨냥한 게 아님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의 방러 일정을 수행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8일 "중·러간 협력은 양국간 장기적 발전을 위한 전략적 결정으로, 글로벌 전략구도의 안정과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는 양국은 물론 국제사회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며 "제3자를 겨냥한 것도 아님과 동시에 제 3자의 도발과 간섭을 절대로 받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시 주석도 7일 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내 친구'라고 부르며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 주석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내 친구”라며 “미국 역시 이를 원치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SCMP는 시 주석이 이날 포럼에서 무역전쟁의 해법을 찾고 세계무역을 증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좀 더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해석했다.
한편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지난달 무역협상 결렬 후 처음으로 이강(易鋼) 중국 인민은행 총재와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8~9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만난다. 이어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회동을 가지고 무역협상 타결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