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체 쿼츠는 최근 “미국의 이번 움직임은 화웨이의 미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며 “화웨이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美-화웨이 갈등 2003년부터 꾸준···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가속화
화웨이는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인 런 회장이 1987년 설립한 회사다. 첫 출발은 홍콩에서 저가 통신장비를 구입해 중국에 판매하는 대리점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부터 직접 기술개발(R&D)에 투자해 중국 대표 기술기업 신화를 써 내려갔다.
쿼츠에 따르면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인 랜드코퍼레이션은 2005년 낸 보고서에서 “화웨이는 민영기업인 것처럼 보이지만 회사의 상당 부분이 중국 정부, 군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2010년 7월에는 모토로라가 화웨이를 제소했다. 모토로라의 무선 네트워크 장비인 SC300 기술을 절취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후 모토로라는 중국 당국이 자신들을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에 나서자 소송을 취하했다.
미국은 2012년부터 화웨이의 기술 절취를 비롯한 보안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해 10월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는 ‘중국 통신장비회사 보안 위험 경고 보고서’를 내고 화웨이와 ZTE(중싱통신)를 ‘잠재적 안보 위협’으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화웨이와 ZTE가 미국의 중요한 인프라에 장비를 공급한다면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의 핵심을 해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2014년에는 미국 3위의 이동통신사 T모바일이 “화웨이 엔지니어들이 사람 손가락을 흉내내 스마트폰을 테스트하는 로봇 기술을 훔쳤다”며 화웨이를 고소했다. T모바일은 민사소송에서 이겨 480만 달러를 받아냈다. 다만 미국 연방 검찰은 민사 합의와 별도로 화웨이를 기소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미국은 특히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지난해부터 노골적으로 ‘반(反)화웨이 운동’을 펼치며 국제사회의 화웨이 보이콧을 주도하기도 했다. 12월에는 캐나다 정부에 요청해 런 회장의 딸이자 화웨이 부회장인 멍완저우를 대(對)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멍 부회장은 지금도 캐나다에 발이 묶여 있으며, 미국은 그의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심상찮은 美의 화웨이 규제··· 출하량 감소 예상
지난해 미국의 제재와 압박으로 위기를 맞은 듯했던 화웨이의 올해 초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무역전쟁 ‘휴전’ 합의로 인해 양국 무역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뜻을 거스르고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업체로 화웨이를 택했다.
그러나 5월 또다시 분위기가 반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통신장비 판매와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와 68개 자회사 모두를 제재 리스트에 추가했다.
이 조치 이후 공급업체 중심으로 탈(脫)화웨이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구글의 안드로이드, 유튜브, 지메일 서비스 등을 쓸 수 없게 된 게 대표적이다. 퀼컴, 인텔, 마이크론을 포함해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 ARM까지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등 주요국 통신 업체는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 중단까지 선언했다. 민간기업뿐 아니라 메모리카드 표준화 기구인 SD연합과 PCI익스프레스 규격을 관리하는 PCI-SIG도 화웨이를 회원사 명단에서 제외했다.
화웨이가 입는 타격은 예상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가 납품 받는 핵심 부품 협력업체들은 91개이며 이 중 중국 현지 업체는 24개에 불과하다. 미국 업체가 33곳으로 가장 많고, 미국 행정명령에 직접적 제재 조치 이행 의사를 밝힌 일본기업도 11곳, 대만은 10곳에 달한다. 중국 현지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소프트웨어, 5G 장비 등의 분야에서 20개 이상의 부품이 1~2년 내 대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조사업체 푸본리서치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미국의 제재가 계속되면 올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이 작년보다 4~2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초 올해 예상 출하량은 2억5800만대였지만 2억대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SA의 스마트폰 담당 책임자인 린다 쑤이는 미국이 제재를 풀지 않으면 내년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이 23%가량 추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화웨이가 구글과 거래하지 못하면 내년 미국과 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중국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화웨이가 완전 파탄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런정페이 자신감 표출에도··· "화웨이 몰락할 수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런 회장은 최근 잇달아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런 회장은 중국 관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죽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단기 돌격전이 아니라 장기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는 싸울수록 더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이 아마 가장 좋은 상태일 것”이라며 “회사 전체가 분발하고 있으며 전투력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협상 ‘카드’로 화웨이를 활용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화웨이가 대체 무역협상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런 회장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화웨이가 최대 6개월분의 부품 재고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확보해둔 부품으로 올 한 해를 버티고 그동안 스마트폰 운영체제(OS)와 반도체 자체 개발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실제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화웨이의 소프트웨어 연구소는 지난 25일 인공지능과 스마트폰 OS를 포함한 분야의 채용 공고를 올렸다. 반도체 계열사인 하이실리콘(하이쓰반도체)도 최근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알고리즘,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 그래픽 센서 등 31개 분야의 국내외 박사급 인재 채용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런 회장의 이 같은 노력에도 외신과 전문가들은 화웨이의 타격이 매우 클 것이라고 전망한다. 시장분석기관 카날리스의 니콜 펭 모빌리티 부문 부대표는 “미국의 화웨이 규제가 장기화하면 화웨이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하다”며 “화웨이는 내수시장을 믿고 자체 OS 개발이 마치 엄청난 대안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먼 곳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진단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화웨이의 국제사회 퇴출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이들은 “일단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내수시장이 아무리 커도 자급자족만으로는 복구가 어렵다”며 “이후 화웨이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경제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