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시샘]부마항쟁을 소환한 딱 두 글자의 힘, 김광규의 '어린 게의 죽음'

2019-05-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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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 계엄령이 선포되자 부산시청 앞에 탱크들이 들어왔다.[사진=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김광규 '어린 게의 죽음'

 


■ 이 시는 인상적인 '로드킬'의 풍경을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시라고 말할 뻔 했다. '군용 트럭'이 없었다면 말이다.

저 트럭이 군용이 아니었다면, 이 시는 생명의 존엄을 말하는 노래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 트럭이 군용이라고 특칭되는 순간, 시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비극 속으로 순간이동하게 된다.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는, 시위군중 속에 끼어있던 어린이다. 어른들이 포승줄에 묶여 피를 흘리며 허둥지둥 이동할 때, 아이는 문득 그 대열을 빠져나와 동네에서 숨바꼭질하듯이 숨으려 한 것이다. 그러다가 넓은 도로를 아장아장 건너려할 때 뒤따라오던 군용트럭에 치여 숨진다.

오직 시위 진압을 향해 앞으로 내달리던 트럭은, 아이의 주검 쯤은 길바닥에 터지거나 말거나, 그냥 지나간다. 자욱하게 먼지를 일으키며 말이다. 어린 아이처럼 자유롭게 놀고 싶었던 아이는 먼지 속에서 가만히 꺼져간다. 그 어린 눈동자에 잠깐 비쳤다 사라지는, 순정한 자유의 빛. 우리 근현대사는 무엇을 짓밟고 지나왔는가를 심문하는 묵중한 시다.

이 시는 1979년 출간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 수록돼 있다. 1979년은 박정희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진, 부마(釜馬)항쟁의 해였다. 시인 김광규는 그 무렵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조교수로 있었다. 독재정권과 정면 대치하는 살벌한 현장에서 저 시를 썼다. 2017년 한 인터뷰(매일신문 황유선 인터뷰)에서 이 시가 부마항쟁을 다뤘다고 직접 언급하고 있다. 시가 나온 뒤 몇 해 지나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났을 때, 마치 '묵시록'처럼 이 시는 다시 부각되기도 했다.


                                         이상국 논설실장
 

[1979년 부마항쟁 때 비상계엄 기사를 다룬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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