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무역전쟁에 시험대 오른 中 빅데이터 굴기

2019-05-2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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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애착 갖는 구이저우 빅데이터 산업

아이디어가 현실로, 서비스 분야 창업 활발

낙후한 경영환경, 인재유치 어려움 등 한계

무역전쟁에 외자 이탈, 반도체 수급난 우려

최근 개장한 구이양 시내의 '구이저우 빅데이터 전시관'. [사진=이재호 기자 ]


지난 15일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의 성도 구이양(貴陽) 룽둥바오(龍洞堡) 국제공항에 내리자 '제5회 국제 빅데이터 산업 박람회' 개최를 알리는 홍보물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구이양 시내로 들어서니 대형 오피스 빌딩 꼭대기마다 '대수거(大數据)'라는 한자 간판이 붙어 있는데, 중국어로 빅데이터를 뜻한다.
중국의 빅데이터 산업 일번지에 발을 디뎠다는 게 실감났다.

구이양은 빅데이터와 관련된 온갖 실험이 이뤄지는 곳이다. 도시 관리부터 자율주행 무인차, 원격 의료서비스, 공유 주차, 스마트 교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사업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구이양을 테스트 베드 삼아 광활한 중국 내수시장으로의 진군을 꿈꾸는 기업들의 의욕도 넘친다.

다만 잘나가던 중국 빅데이터 산업이 무역전쟁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미국과의 갈등이 더욱 격화할 경우 신규 외자 유치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애플과 퀄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구이저우에 진출했던 기존 기업들의 이탈 가능성도 제기된다.

빅데이터 산업의 핵심인 데이터센터 설립에 소요되는 핵심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중국의 빅데이터 굴기 전략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랑마정보기술의 원격 의료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베이징 대형 병원의 의사가 구이양에 거주하는 환자를 문진하는 모습. [그래픽=이재호 기자]


◆빈촌에서 베이징 명의 진료 받는다

구이저우를 빅데이터 산업 중심지로 육성하는 것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특히 애착을 보이는 국가 시책이다.

지난 2015년 6월 구이저우로 시찰 온 시 주석은 "구이저우가 빅데이터 산업을 발전시키는 건 일리가 있다"며 "후발 주자이지만 열심히 쫓아가고 추월해 동부 지역과 다른 발전의 길을 개척하라"고 독려했다.

이듬해인 2016년 2월 구이저우는 중국의 첫 국가급 빅데이터 종합 시험구로 선정됐다.

기자와 만난 쉬하오(徐昊) 구이양시 상무부시장은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면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중국 내 대표적 빈곤 지역이었던 구이저우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쉬 부시장은 "구이양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대한 첨단기술 경제의 기여도는 61% 수준으로 첨단산업 메카인 선전보다도 높다"고 귀띔했다.

구이양 첨단산업개발구 내 5G 응용·혁신 연합 실험실에 입주한 차이나유니콤 연구센터는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도시 관리 플랫폼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교통량과 도로 이용 현황을 분석해 교통 법규를 수정하고, 농촌 지역의 토양과 기후 상황에 적합한 작물을 골라주는 식이다.

왕보(王波) 차이나유니콤 5G 혁신센터 주임은 "지난해 10월부터 반년 이상 실제 도시 관리에 적용하는 중"이라며 "올해 빅데이터 박람회 때 공식 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차이나유니콤은 자율주행 무인차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연구센터에서 20㎞ 이상 떨어진 곳에서 무인차를 원격 조정하는 시험도 마쳤다.

구이양에 본사를 둔 랑마(朗瑪)정보기술은 구이저우 내 기업 중 처음으로 차스닥에 상장했다. 2016~2018년 연속으로 중국 100대 인터넷 기업에 선정됐다.

랑마의 39건강망은 매월 4억명 이상이 이용하는 원격 진료 플랫폼이다. 등록된 3만명의 의사가 환자와 직접 상담한다. 지방의 소규모 병원에 소속된 의사가 베이징 등 대도시의 대형 병원 의사와 원격으로 환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베이징대 제1인민병원 호흡기내과 의사가 39건강망 플랫폼을 통해 원격 진료 중이었다.

리샤오판(李笑凡) 랑마 홍보 책임자는 "중국 서부지역 빈곤층의 의료 환경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대도시 의사와의 문진을 통해 암 등 중증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2015년 설립된 처미커지(車秘科技)는 중국 중서부에서 최초로 공유 주차 아이디어의 사업화에 성공했다.

빅데이터 기술로 구이양 시내 8000여개 주차장의 주차 공간 현황을 분석해 운전자에게 최적의 장소를 추천한다.

장여우(張友) 처미 공동창업자는 "지방정부의 최대 현안인 주차난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지난해 처음 사업을 시작한 뒤 올해 매출은 1억2000만 위안으로 30% 증가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구이안신구 데이터경제산업단지에 입주한 현대차 빅데이터센터. 퀄컴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간판도 보이지만 실제 입주하지는 않았다. [사진=이재호 기자 ]


◆빅데이터 단지에 홀로 남은 현대차

현대차는 2017년 구이양 구이안(貴安)신구에 첫 해외 빅데이터센터를 설립했다. 지난 17일 구이안신구 데이터경제산업단지 내 센터를 방문했다.

박세민 현대차 빅데이터기획부장은 "빅데이터 분석 기법으로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를 파악해 차량을 설계하고 생산 공정을 개선하는 등의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바이두와 협력해 커넥티드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파트너인 바이두는 산업단지를 떠난 지 오래다. 당초 산업단지에 입주하기로 했던 애플과 퀄컴, MS 등의 기업도 구이저우 내 다른 지역에 터를 잡았다.

해당 산업단지에 입주한 곳은 현지 기업과 외자 기업을 통틀어 현대차가 유일하다. 텅텅 빈 공간은 구이안신구 정부가 메울 예정이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알리바바도 구이저우에서 자금을 빼 충칭에 1000억원 정도를 투자한다는 소문이 있다"며 "여전한 관료주의와 낙후한 경영 환경, 인재 수급의 어려움 등 때문에 구이저우 빅데이터 산업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자칫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더이상 구이저우에 남아 있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자 이탈과 더불어 빅데이터 산업의 핵심인 데이터센터 신규 설립 및 유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빅데이터 분석은 최소 수십대에서 최대 수천대의 서버로 구성된 데이터센터에서 이뤄진다. 서버의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의 경우 미국 인텔이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시장도 인텔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으로는 아직 명함을 내밀기 힘든 게 현실이다. 반도체 수급 불안은 빅데이터 산업에 치명적이다.

구이저우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한 글로벌 기업 관계자는 "중국의 빅데이터 시장은 여전히 잠재력이 크고 매력적"이라면서도 "미·중 갈등이 지속된다면 빅데이터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사안들이 점점 많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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