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머리색부터 언어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른 '별에서 온 그대'를 문화로 사로잡게 되리라고.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소년·소녀들을 춤추게 했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송송 커플은 모든 '아이템'을 완판 시켰으며,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는 할리우드에 견줄 법한 CG 기술과 한국적 감성으로 K-무비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렇듯 음악, 드라마,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타고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이러한 한류의 중심에는 '콘텐츠'의 중요성을 미리 깨친 한국 엔터사들이 있었다.
아주경제는 문화강국을 이끄는 주역, 엔터사의 현재 위치를 점검하고 미래 비전을 분석하고자 한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엔터산업을 위한 '투자 가이드', 이른바 <한국 엔터 넥스트 10년>이다.
아주경제는 문화강국을 이끄는 주역, 엔터사의 현재 위치를 점검하고 미래 비전을 분석하고자 한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엔터산업을 위한 '투자 가이드', 이른바 <한국 엔터 넥스트 10년>이다.
3200원.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쇼박스 1주의 가격이다. 쇼박스 주식은 총 6260만주가 상장돼 있다. 총 가치(시가총액)는 2176억원이다.
세부적인 재무실적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 매출액은 685억원, 영업이익 52억원, 영업이익률 7.6%다. 100원짜리 콘텐츠를 팔아서 7~8원이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 요즘 같은 '노 마진' 시대에 괜찮은 편이다. 쇼박스는 영화 배급사 중에서 손익분기점(BEP)을 잘 넘기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쇼박스 주주들은 만족했을까? 정답은 '노'(No)다. 지난해 5월 5260원(2018년 5월 18일) 하던 주가가 약 40% 하락했기 때문이다.
쇼박스 주주들은 3000원대 주가가 영화 한 편 가격(1만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버거킹 햄버거 가격(4달러=4900원)까지는 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다시 5000원대 거래되는 쇼박스를 만날 날은 언제올까.
지난해 타사에 비해서 굵직한 '텐트폴 무비'가 없었던 쇼박스는 올해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자세로 재도약에 나선다는 각오다. 쇼박스 재도약의 중심에는 지난해 새 대표로 선임된 김도수 쇼박스 영화부문 대표이사가 있다.
◆'선택과 집중' 쇼박스의 콘텐츠 우선주의
쇼박스는 한 해에 10편 미만의 영화를 배급한다. 경쟁업체인 롯데와 CJ처럼 극장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와 배급에 실적이 다 걸려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쇼박스의 사업구조가 마냥 좋지 않다. 흥행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실적도 하락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2017년과 2018년만 비교해도 알 수 있다.
쇼박스는 2017년 7편(프리즌, 특별시민, 택시운전사, 살인자의 기억법, 희생부활자, 살인자의 기억법 : 새로운 기억, 꾼)을 배급했다. 택시운전사가 1219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95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8년 전체 매출액보다도 큰 규모다.
2018년에는 5편(조선명탐정, 곤지암, 암수살인, 성난황소, 마약왕)을 배급했다. 기대를 모았던 마약왕은 부진했지만, 나머지 영화는 BEP를 맞췄다. 5편의 누적 관객수는 총 1236만명이다.
쇼박스는 전통적으로 콘텐츠 자체에 집중했다. 좋은 영화를 투자, 배급하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플랫폼 사업인 메가박스를 매각한 것도 이같은 이유다.
이런 콘텐츠 우선주의는 쇼박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쇼박스가 대중과 공감하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면 실적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도둑들', '암살', '택시운전사' 등 쇼박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1000만 영화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쇼박스 관계자는 "그동안 내실있는 작품부터 대작까지 다양한 영화를 다뤘다"며 "메시지가 좋고, 장르적으로 재밌는 영화라면 관객이 선택해줄 것이라고 믿고, 이를 선뵈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반기, 쇼박스의 '전투'가 시작된다
쇼박스는 올해는 7편을 준비했다. 앞서 뺑반, 돈, 미성년이 개봉했고, 하반기에도 4편이 준비돼있다.
하반기 최대 기대작은 전투다. 전투는 1920년 만주 지린성 봉오동에서 벌였던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를 다룬 영화다. 쇼박스 특유의 완성도와 류준열, 유해진의 활약이 잘 어울러져서 흥행이 기대된다.
영화 이름처럼 전투의 흥행 성패는 쇼박스 한 해 농사 명운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 1970년대 정치 공작을 주도했던 중앙정보부 부장들의 이야기 '남산의 부장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변호사와 퍼펙트한 인생을 꿈꾸는 건달의 이야기를 담은 '퍼펙트맨', 필리핀으로 패키지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현지에서 친구를 만나며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패키지'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위기 때마다 좋은 선구안으로 히트작을 만들어냈던 쇼박스가 다시 한 번 재기할 수 있을지는 이 4편의 영화에 달려있다. 쇼박스가 강조하는 '메시지'와 '공감'이 하반기 스크린에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반드시 가야할 해외시장 개척"
쇼박스는 현재 매출에서 해외매출이 차지하는 부분이 적지만, 합작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이 부문 실적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쇼박스 해외판권 수출 계약은 26억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3%다. 국내 영화시장은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중국,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은 투자배급사에게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쇼박스는 중국, 미국, 동남아시아 시장 등을 가장 주목하고 있다. 합작 형태로 콘텐츠를 제작한다거나, 혹은 기존 영화들 중 해외 시장에서도 반응이 좋을 만한 영화의 리메이크 논의 등을 하고 있다.
쇼박스는 "중국은 한한령으로 인한 제약이 있긴 하지만 현지에서 활발히 제작 활동을 보이고 있는 영화사 및 영화인들과 꾸준한 네트워킹을 통해 공동 콘텐츠의 기획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 시장에서는 한국의 콘텐츠, 그리고 감독 및 작가와 함께 미국 시장 내에서 경쟁력 있는 프로젝트들을 기획 개발 중"이라며 "동남아시아 시장도 기존 쇼박스의 영화 리메이크를 중심으로 현지 제작사들과의 기획과 제작을 공동 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투자배급부터 영화 상영까지 수직 계열을 이룬 CJ와 롯데에 비해서는 다소 뒤처질 수 있다. 이들 브랜드는 이미 10년전부터 동남에서 브랜드를 알렸고, 현재는 수익으로 연결되고 있다. 쇼박스는 이들을 따라가기 보다는 지적재산(IP) 수출, 현지 맞춤형 콘텐츠 제작 등 차별화 전략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드라마 진출, 새로운 캐시카우 될까?
쇼박스는 올해 스크린 뿐 아니라 TV 드라마에도 진출한다. JTBC를 통해 나오는 '이태원클라쓰'와 '대세녀' 등 작품이 준비돼 있다.
두 작품은 모두 인기 웹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광진 작가의 '이태원 클라쓰'는 요식업계 대기업 회장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온갖 고생 끝에 이태원에 가게를 차리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다.
여은 작가의 '대세녀'는 화장에 미숙한 대학 새내기 여학생이 의문의 인형을 만나면서 겪는 성장 로맨스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미국, 태국에서도 인기를 끈 바 있다.
쇼박스 관계자는 "이야기를 다루는 회사로서, 드라마 제작 역시 확장된 관점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라고 본다"면서 "자체 IP를 구축해 영화, 드라마, 부가사업 등 여러 방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이사 교체...'쇼박스'의 'SHOW'는 이어질까
쇼박스는 지난해 10년간 대표로 일했던 유정훈 대표이사가 메리크리스마스로 이직했다. 정현주 투자제작본부장도 에이스 메이커 무비웍스로 자리를 옮겼다. 그 빈자리는 김도수, 황순일 공동대표가 채우고 있다. 김 대표는 영화사업을 맡고, 황 대표는 관리 부문을 맡고 있다.
지난해 공동 대표 체제의 출발은 불안했다. 공교롭게 지난해 영화 흥행 실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과거 인터뷰에서 '영화적인 콘텐츠'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로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따뜻한 리더십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도 잘한다고 알려졌다.
작년이 신임 대표로서 업무를 파악하고, 내부와 소통하는 시간이었다면 올해는 실적을 내야 할 때다. 김 대표가 하반기 흥행과 쇼박스 주가 상승 등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영화 업계 관계자는 "쇼박스는 20년 넘게 한국 시장에서 영화 배급을 할 만큼 콘텐츠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있다"며 "흥행에 몰두하기 보다는 관객들이 공감하는 영화를 찾는다면 쇼박스가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