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열혈사제' 고준, 끓는점에 도달하다

2019-05-1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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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말하기를 제가 '섹시하다'고. 하하하.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어떤 점이 그런 건지요. 기자님들은 어떤 거 같나요? 제가 왜 그런지 아시겠어요?"

안다고 해도 부러 말하지 않기로 했다. 배우 고준(41)의 팬들을 위해서였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의 어떤 매력이 훼손될까 걱정되는 마음이기도 했다.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황철범 역을 맡은 배우 고준[사진=BS컴퍼니 제공]


영화 '와니와 준하'(2001)부터 '과속 스캔들'(2008) '써니'(2011) '타짜2'(2014) '럭키'(2016) '청년경찰'(2017) '변산'(2017)을 지나 드라마 '미스티'(2018) '열혈사제'(2019)'에 이르기까지 고준은 언제나 묵묵히 그리고 아프게 작품, 캐릭터를 견뎌왔다.
"대학 시절, 눈빛에 '깊이가 없다'고 지적받곤 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선이며 언어 하나하나에 풍부한 감정이 묻어 있는 그는 오로지 '연기'에 관한 고민으로 30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고민과 갈등, 인내는 지금의 '매력'을 완성해냈고 고준 특유의 분위기, 팬들이 말하는 '섹시함'을 구축해냈다.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고준은 팬들의 뜨거운 반응이 다소 낯설다고. 그러나 팬들의 반응은 조금도 허투루 만들어진 게 아니란 걸, 고준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오래도록 끓인 열정, 애정, 고민이 오늘에야 '끓는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다음은 SBS 드라마 '열혈사제' 종영 후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고준의 일문일답이다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황철범 역을 맡은 배우 고준[사진=BS컴퍼니 제공]


주변 반응이 뜨겁다. '미스티'부터 '열혈사제'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주변 반응을 실감할 거 같은데
- 일단 팬클럽 회원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200명쯤 됐었는데 지금은 2000명 대로 늘어났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늘어나고 있고. 하하하. 기분이 묘하고 감사하다.

매번 팬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곤 했었는데
- 신기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뭐든 해주고 싶기도 하고. '고준의 팬'이라는 게 자랑스럽도록 자부심이 돼드리고 싶다.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게 고민이다. 가끔 현장도 찾아오시는데 '고준 팬이다'하면 떵떵거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니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팬들은 '왜', 고준에게 빠졌다고 하던가?
- 모르겠다. '섹시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나의 어떤 점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얼굴도 새카맣고 악역을 많이 해서 무서울 텐데. 하하하. 팬클럽도 정회원이 아니라 준회원이라서 팬들이 어떤 의견을 주고 받고, 제가 왜 좋은지 열람 할 수가 없다. 다만 제가 느끼는 건 '열혈사제'로 입덕한 팬보다는 이전부터 지켜봐주시던 분들이 많았는데 '열혈사제'가 기폭제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앞으로도 더 잘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잠깐 언급했듯 '악역'을 많이 많았지만, '열혈사제' 속 황철범은 그간 캐릭터들과 결이 달랐다. 인간적인 매력도 엿보였는데
- 아이스크림으로 따지자면 이전에는 바닐라, 초코, 딸기 같은 '단품' 연기를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합형'인 셈이다. 바닐라 초코 같은 느낌! 완벽한 상태가 아닌 거다. 그래서 황철범의 언어도 사투리를 쓰되 서울에서 오래 지냈다는 설정으로 '고향 말을 잘 못 한다'는 부수적인 콘셉트를 만들어봤다. 정서적으로는 나쁘더라도 정이 많고 '내 편'만큼은 확실하게 책임지는 인물이다.

실제 성격과 황철범이라는 인물의 '간격'은 얼마나 되는 편인가?
- 모든 캐릭터는 다 본인 안에 내포되어있다고 본다. 색깔로 따졌을 때 제게 무지개 색이 있다면 연기할 때는 특정 한 색깔을 오래 보여주는 셈이다. 나이를 먹고, 환경이 달라지니까 나는 계속 변하지 않나. 연기도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내 안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달라지니까.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황철범 역을 맡은 배우 고준[사진=BS컴퍼니 제공]


한 색깔을 오래 보여주는 것에 고민이 있나 보다
- 그렇다. 과거 악역을 5~6년 정도 해왔는데 오래 악역을 꺼내놓고 지내니 정신이 피폐해지더라. 불만투성이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 같기도 하고. 악역을 아예 안 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선한 역도, 악역도 번갈아 가면서 보여드리면 제 안에서 변화가 생길 텐데 5~6년간 악역만 보여드리니 그 세계에 빠져살아야 해서 힘들었던 것 같다.

황철범은 스스로 '혼합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입체적이었는데. 그 입체적인 캐릭터의 숨어있는 '디테일'이 있다면?
- 숨어있는 디테일이었는데 시청자분들이 알아봐주셔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황철범이 박경선(이하늬 분) 검사를 좋아한다는 설정. 대본에는 없던 건데 촬영하던 도중 감독님께서 제안하신 것이었다. 감독님께서 '마초적인 철범이에게 내 자리를 꿰찬 검사가 매력적이라면 이성적으로 느껴지지 않겠니?'하고 물으시더라. 바로 느낌이 왔고 눈빛에 호감을 섞었는데 시청자분들께서 기가 막히게 읽으시더라.

넷상에서 황철범과 박경선의 '러브라인'을 두고 앓는 팬들도 많았다
- 무식하게 일처리를 하는 철범에게 브레인인 박경선 검사는 매력적인 인물이었을 거 같다. 처음에는 신경 쓰이다가 나중에는 이성적 호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 연기에 그런 감정을 넣었는데 다들 알아주셔서 즐거웠다. 황철범이 박경선에 자동차 선물을 하는 장면도 구청장은 적당한 세단을 주었는데, 황철범이 부하 직원들을 시켜 '검사라면 이쯤 되어야지' 식으로 스포츠카를 선물했다는 식이다.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황철범 역을 맡은 배우 고준[사진=SBS 제공]


이하늬와의 호흡은 어땠나. 이런 미묘한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호흡도 중요했을 텐데
- 우리는 영화 '타짜2'동기다. 하하하. 매우 친한 사이. (이)하늬가 잘 돼서 정말 좋다. 그런 사람은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착하고, 천사표인 데다가 만인을 표용 하는 그릇이 큰 사람이니까.

'열혈사제'는 배우들의 차진 연기가 일품이었다. 이하늬 외에도 배우들의 연기 합을 언급한다면
- (김)남길이, (김)성균이는 연기를 너무 잘해서 가끔 '이게 연기인가, 진짜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두 친구에게 많이 배웠다. 남길이에게는 작품 전체를 보는 시야와 많은 신을 이끌어가는 운영 능력을, 성균이는 대본을 차지게 살려내는 능력을 보았고 그 점을 배운 것 같다. 또 하늬는 연기를 잘 가지고 논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잘 가지고 놀면서 보여주더라. 본받을 정도다.

'청년경찰'(2017)부터 드라마 '미스티'(2018) 영화 '변산'(2018) '열혈사제'(2019)까지 연달아 터졌다. 영화 '와니와 준하'(2001)로 데뷔, 무명생활이 길었는데
- 주제 파악을 못하던 20대를 지나긴 준비 기간을 하던 30대 그리고 현재의 제가 있는 거다. 과거의 저는 '기회'만 쫓아다녔다. 어떻게든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저의 단점을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30대는 그 부족한 점들을 채우고 개선하기 위해 애썼다. 지하 골방에 갇혀서 종일 연기 연습만 했고 6년간 저의 연기를 찍고 분석하면서 단점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린다'고 생각지 않았다. 하루하루 업그레이드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괴롭지 않았던 거 같다. 채우고 성장하는 기분으로 달렸고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주제 파악'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 여러 가지 요인이 중첩되며 결과적으로 내린 선택이었다. 잠깐 연기를 포기했었는데, 모든 걸 내려놓고 외부에서 '나'라는 존재를 바라보니 알겠더라. 세 달 만에 복귀해서 다짐했다. '연기를 잘 할 때까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말자'고. 그래서 지하 연습실을 차려서 6년 간 저를 가뒀던 거다.
 

[사진=BS컴퍼니 제공]

이제는 연기가 일상이 되었는데. 행복한가?
- 모순적 언어인데 연기는 힘든데, 작품이 끝나면 연기하고 싶다. 현장에서는 '아, 이제 다시는 연기 못하겠다. 연기하기 싫다!' 하다가도 작품이 끝나면 왜 이렇게 연기 하고 싶고 그립고 애틋한지.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거 같은데
- 캐릭터에 깊이 파고드는 편이다. 그간 건강한 정신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지 않아서 심적으로 힘들었다. '변산' '바람바람바람'을 찍으면서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즐겁고 재밌더라. 저도 모르게 캐릭터의 '심리'를 따라가는 거 같다.

그럼 앞으로 고준의 차기작은 '밝은 캐릭터'로 만나는 건가?
- 글쎄. 워낙 시커멓고 무섭게 생긴 편이라서 밝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하하. 사실 보여드리고 싶은 게 굉장히 많다. '너는 내 운명' 황정민 선배 같은 순수함을, '오아시스' 설경구 선배의 현실 감각을, '살인의 추억' 송강호 선배의 동물적 감각을 가진 소시민적 면면 등을 연기해보고 싶다. 다양한 장르, 캐릭터를 말이다. 결국 '사람'을 표현하고 싶은 것 같다.

보고 있는 작품들이 있나?
-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여러 작품을 보고 있다. 아직 '열혈사제' 일정이 끝나지 않아서 실감이 나질 않는다. 대중을 악역으로 만날지, 선한 역으로 만날지도 모르겠다. 저도 어떤 모습을 보여드리게 될까? 어떤 캐릭터를 만나게 될까? 걱정 반, 기대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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