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베타! 어서 와 알파!" 펀드 투자설명회가 3년 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렸다. 여기서 프랑스 H2O자산운용 브루노 크래스트 대표는 이런 화두를 던졌다. 채권왕으로 불리던 빌 그로스 전 미국 야누스캐피털 포트폴리오매니저에게 사실상 작별을 고한 거다.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빌 그로스는 수년째 나쁜 실적을 내다가 올해 2월 은퇴를 선언했다. 반면 브루노 크래스트가 이끄는 H2O자산운용은 유럽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회사로 성장했다. 브루노 크래스트는 이제 빌 그로스를 잇는 새로운 채권왕으로 불린다.
채권왕을 바꾼 '베타'와 '알파'는 무엇일까. 먼저 베타는 시장수익률을 기준으로 삼는다. 시장수익률보다 더 크게 움직이면 베타도 1보다 커진다. 거꾸로 더 작게 움직이면 베타는 1보다 작아진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코스피가 10% 오를 때 수익률이 20%인 금융상품은 베타를 2로 평가한다. 다시 수익률이 5%인 금융상품이라면 베타는 0.5일 것이다. 베타는 포트폴리오를 짤 때 매우 중요하다. 시장수익률이 오를 때 베타를 최고로 높일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반대로 시장수익률이 내릴 때에는 베타를 최저로 낮추고 싶을 것이다.
알파는 시장수익률 등락과는 무관하다. 투자자가 능력껏 만드는 초과수익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코스피가 10% 상승할 때 주식만 담은 펀드 수익률이 15%라고 치자. 여기서 베타 수익률은 코스피 상승률과 똑같이 10%다. 이를 뺀 나머지 5%가 바로 알파 수익이다. 수많은 펀드매니저가 알파 수익률을 좇는다. 베타 수익률을 앞질러 시장수익률보다 나은 성과를 내고 싶어서다.
그럼 좋은 펀드는 어떻게 골라야 할까. 시장이 거의 제자리걸음한 기간을 택해 수익률을 비교하면 좋다. 개인적으로는 2013년부터 2018년 사이를 본다. 물론 중간중간 등락폭이 컸던 적도 있다. 그래도 처음과 끝만 보면 코스피는 2010선에서 2040선으로 1% 남짓 오르는 데 그쳤다. 이런 시기에는 베타를 바탕으로 거둔 수익은 거의 없고 알파 수익만 생겼다고 볼 수 있다. 5~6년 전 무더기로 나왔던 헤지펀드가 이 기간 어떤 성적을 냈는지 확인해 보았다. 연 평균 수익률이 5%를 넘어서는 펀드는 다섯 손가락만으로 꼽을 수 있었다. 이런 펀드가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 꾸준히 알파 수익을 올리는 좋은 상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브루노 크래스트가 베타에 작별을 고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 등락과는 상관없이 절대수익을 내고 싶어서일 것이다. 펀드매니저가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장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도리어 시장수익률을 기준으로 삼는 베타를 극단적으로 낮게 만드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알파 수익만 좇는다면 시장이 크게 출렁여도 괜찮은 방어력을 보여줄 것이다.
애초 신이 아니라면 시장 등락을 맞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를 일찌감치 포기한 세계적인 투자가가 적지 않다.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 필립 피셔, 세스 클라르만 같은 성공한 가치투자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가치투자가는 공통적으로 시장 예측을 포기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요즘 상장지수펀드(ETF)로 베타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많아졌다. ETF는 시장수익률에 철저하게 연동한다. 즉, 베타 수익률에 100% 의존하는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상승장을 예상한다면 베타가 1인 일반 ETF나 베타가 2인 레버리지 ETF를 사면 된다. 반대로 하락장을 점치고 있다면 베타가 -1인 인버스 ETF를 매수하는 식이다.
가치투자를 믿는다면 이런 투자는 인정하기 어렵다. H2O 펀드나 혼합형 인컴 펀드, 중위험·중수익 펀드처럼 베타 요인을 낮추고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 늘어나는 이유가 있다. 믿을 만한 펀드매니저가 굴리는, 알파 수익을 좇는 펀드를 택한다면 투자 성패를 시장 등락에 맡기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