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염색하거나 온몸의 털을 모두 제거하면 마약검사에도 적발되지 않는다는 ‘설‘이 대중에게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전직 베테랑 형사 등 전문가들이 방송 등에 출연해 마약사건 수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부터다. 하지만 마약사범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알려진 단속회피 수단이었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이 방법은 과거엔 생각보다 효과적이었던 모양이다. 범죄현장에서 도주한 피의자들이 여러 달 뒤에 머리카락에 노란물을 들이고 온몸의 털을 민 뒤에 '자수하겠다'며 나타났다는 ‘전설’이 전해오지 않은 경찰서가 없을 정도다.
마약사건이 적발되면 수사당국은 가장 먼저 소변이나 혈액을 체취해 시약반응을 검사한다. 보통 ‘간이 마약검사’라고 하는데, 약물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7~10일 사이에 마약을 투약한 경우라면 간이 마약검사에서 적발이 된다.
머리카락이나 체모를 채취하는 마약검사는 관련 장비와 노하우가 갖춰진 전문연구실에서 진행하는 감식방법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담당한다. 이론적으로 머리카락 길이만 충분하다면 수년전 것도 찾아낼 수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인간의 신체는 매일 새로운 영양분을 흡수하고 오래된 노폐물을 배출한다. 그리고 새로 섭취한 영양분으로 신체의 새로운 부분을 만든다. 공기를 비롯해 사람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새로운 신체의 일부분‘이 된다.
머리카락이나 체모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카락은 매일 조금씩 자라는데, 그 무렵 섭취한 영양분을 ‘재료‘로 머리카락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마약을 했다면 머리카락 어느 부분은 ‘마약’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머리카락을 구성하는 물질을 분석할 수 있다면 언제 뭘 먹었는지 알아낼 수도 있다. 물론 마약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를 달리 해석하면 머리카락이나 체모가 한올도 없다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발상이 가능하게 된다. 염색의 경우는 염색약의 화학성분이 머리카락에 스며들어 마약의 검출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온 방법이다. 마약이 워낙 극미량이다 보니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베테랑 수사관들은 “사람의 몸에는 생각보다 많은 털이 있다“면서 “눈에 띄지 않는 다양한 곳에 체모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중 어느 한 곳이라도 채취가 된다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제모와 염색을 했더라도 ‘말짱 헛일’인 셈이다.
염색도 마찬가지. 극미량의 물질이나, 염색약으로 변화된 물질에서 마약성분을 찾아내는 기술은 지금 이 시간에도 발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대대적인 제모나 염색이 증거인멸의 증거가 돼 오히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브라질 왁싱‘처럼 전문가가 체계적으로 제모를 한 경우에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몸에서는 하루 100~200여개의 체모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의자의 주변을 잘 뒤지면 수백개 정도의 체모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즉, 피의자가 생활하는 공간을 뒤지면 얼마든지 체모를 확보할 수 있다.
경찰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눈썹까지 밀고 오면 적발이 안 된다는 것이 어느 정도 맞았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설령 피의자가 완벽하게 제모와 염색을 했다고 해도 유죄인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마약을 함께 했다는 신뢰성 있는 진술이나 CC(폐쇄회로)TV 같은 객관적 증거만 있다면, 완벽한 제모와 염색이 오히려 마약을 했다는 간접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약사건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검찰관계자는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에 다수의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꼼수로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