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C 등 외신들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이란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인 8개국(한국·일본·중국·인도·대만·터키·그리스·이탈리아)에 적용했던 한시적 제재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5월 2일 0시부터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면 경제제재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이란산 원유 전면 금수 조치가 나온 뒤 국제유가는 3% 급등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65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저점에서 54% 급등했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도 지난 11월 이후 처음으로 74달러대를 돌파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5월 일방적으로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한 뒤 같은 해 8월과 11월 두 단계에 걸쳐 이란산 원유 금수 조치 등 제재를 발동했다. 다만 8개국은 180일간 제재 예외 대상국으로 분류했다. '오일쇼크'를 우려해서다.
이란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 만과 오만 만을 잇는 좁은 해협으로, 페르시아 만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주요 운송로 중 하나다. 이란산 원유도 이 해협을 통해 수출된다. 해협이 봉쇄되면 국제원유 수급이 불안정해져 유가 상승 요인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함께 이란산 원유의 공급 감소 문제를 상쇄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원유시장에는 회의론이 번지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 회사인 팩츠글로벌에너지의 이만 나세리 중동 담당 전무는 "시장이 압력을 받으면서 유가가 확실히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회원국으로 구성된 OPEC+(플러스)의 적극적인 원유 감산 의지도 유가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앞서 OPEC+는 오는 6월 말까지 하루 평균 산유량을 120만 배럴 줄이기로 한 약속을 재확인한 상태다. 추가 감산 여부 등을 두고 OPEC의 감산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유가가 당분간 상승세를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OPEC+의 감산 노력과 셰일 원유 공급 등에 따른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분기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72.50달러를 기록했다가 2020년에는 배럴당 60달러대를 유지할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SK이노비에션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 두 곳도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이란산 원유 수입이 막히면 경제성이 다소 떨어져도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이란 쇼크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데다 미국의 이란산 원유 금수 조치 이후 약 6개월의 유예기간이 있었던 만큼 대안을 마련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란산 컨덴세이트 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만큼 이번 제재로 원가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대체유종 확보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한 만큼 수입국 다변화 등의 노력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통상 운영 비용 가운데 유가가 평균 20~30%를 차지하는 탓에 유가의 영향이 큰 항공업계 사정도 마찬가지다. 유가가 상승하면 유류할증료도 올라가지만 유류할증료는 매수 당시의 가격을 반영하기 때문에 시차가 있는 만큼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