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학계에서 학문생태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분투한 결과가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다수 시간강사의 대량해고로 나타나고, 이것이 학문후속세대의 단절을 가속화하여 학계가 황폐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기초연구에 대한 국가투자를 임기 내에 2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과학기술분야 연구비가 지난 2년간 상당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인문사회계 연구지원 예산은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학계의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점을 의식하여 정부는 지난 4월 5일,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는데, 지난주에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가 보여주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를 환영하면서도 좀 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나라의 품격을 상징하는 학문체제는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와 이를 재생산하는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의 학문체제는 분단체제의 형성에 따른 이념적 정당성 경쟁에 이바지하고, 국가형성에 필요한 인력을 우선 양성하는 교육정책에 의해 주조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공업화에 필요한 인력양성체제가 주도하기 시작했고, 모든 국민들은 사회적 상승이동의 열망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에 매달렸다. 물론 그 종착역은 대학입시였다.
한국의 대학원 정책은 1975년 서울대학교의 종합화를 계기로 체계화되었는데, 그것은 과거의 일본식 대신 미국식 대학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도전환은 1980년대의 대학 팽창기를 맞아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1998년 IMF 사태 이후, 실용적이고 자격증을 따는 학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학문발전의 기반이 되는 기초학문을 외면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한국의 학문생태계가 교란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우리 학계가 처한 현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우수 인재들이 기초학문을 연마하는 대학원을 외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렵게 박사학위를 받아도 교수직을 얻기 위하여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에서 시간강사는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강의의 약 절반을 담당하는 사람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는커녕 최소한의 생활조차 보장이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은 우리 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2000년 이후 박사학위 소지자가 대학교수직보다 훨씬 많아지면서, 적절한 기회를 얻지 못한 인재들이 이곳저곳을 강사로 전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근래에는 수도권 중심의 대학 발전과 인구감소로 인한 대학구조조정 때문에 학문생태계가 더 피폐해졌다. 이제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의 길을 간다는 것은 고행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우리 대학들이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 지 오래되었지만, 일부 대학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학부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중심대학이지, 대학원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중심대학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조차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곧 실업자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성숙과 삶의 질이라는 맥락에서 학문정책과 대학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건전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학문과 교육의 불균형,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불균형, 그리고 교수직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박사들 간의 심각한 격차를 고쳐야 한다. 오랫동안 우리 대학을 지배해온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를 극복하고,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있는 학생들을 연구자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학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연구중심대학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그렇지 않은 대학에서는 대학원 공동운영을 모색해야 하며 충분한 자격을 가진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질 필요가 있다. 대학과 지방정부의 연구소, 그리고 기업 연구소간에도 활발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공부와 연구가 좋아서 학문을 택한 사람들도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