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속과정서 벌어진 '형제의 난'
지난 2002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이 별세한 후 한진그룹을 4개로 쪼개졌다. 장남인 고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을 필두루 한 한진그룹을, 둘째 조남호 회장인 한진중공업, 셋째 고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 넷째 조정호 회장이 메리츠금융(당시 동양화재·한진투자증권)을 각각 맡았다.
조 창업회장은 재산 대부분을 대한항공에 상속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별세했는데, 조남호·조정호 회장은 이 유서가 왜곡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 창업회장이 상당기간 혼수상태로 지내 유언장을 작성하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혹은 법정공방으로 이어져 지난 2005년부터 수 년간 지속됐다. 조양호·조수호 대 조남호·조정호로 나뉘어 한진가 '형제의 난'을 벌인 것이다. 셋째인 조수호 회장은 당시 '알짜기업'인 한진해운을 물려받았기에 유서에 큰 불만없이 조양호 회장 편에 섰다. 이후 한진가 네 형제는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됐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은 주보험 거래처를 메리츠손보에서 타 보험사로 옮겼다. 한진중공업에서는 해외출장 때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시도 있었다고 한다.
'형제의 난'에서 한 배를 탔던 조양호·조수호 회장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난 2006년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조양호 대한항공 전 회장도 8일 미국에서 별세했다. 이들과 반대편에 있던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만이 남있다.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상대방이 세상을 떠난 지금, 한진가는 다시 화해할 수 있을까. 조중훈 창업회장이 쌓아올렸던 육(한진)·해(한진해운)·공(대한항공) 수송체계와 금융지원(메리츠금융) 생태계는 다시 하나가 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아직은 요원해보인다. 갈등과 반목의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집안 간 감정의 골도 깊어질대로 깊어졌을 뿐 아니라 이미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지주 관계자는 "조 회장은 이미 17년 전에 한진그룹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지분·승계 등에 있어서 더 이상 관계가 없다"며 "조정호 회장은 가족의 도리로서 조양호 회장 장례절차에는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양호 회장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형제가 화해를 논할 수 있는 당사자는 이미 사라졌다"며 "메리츠금융지주나 한진그룹도 이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오너 집안끼리 관계를 해소한다고해서 사업적인 결실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