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스페셜 칼럼] 말레이 차량공유 '그랩'의 성공신화

2019-04-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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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지난 겨울 말레이시아 여행 갔을 때 얘기다. 비행기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새벽 5시에 도착하게 되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목적지인 지인 자택까지 가야하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픽업을 부탁할 수가 없어서 그랩이라는 카풀 서비스를 이용했다. 공항 내 무료 와이파이를 통해 그랩 모바일 앱에 행선지를 입력했더니 차량 번호, 기사의 사진이 나오고 5분 후면 3번 게이트로 차량이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소형 승용차를 타니 젊은 기사가 친절하게 맞는다. 낮에는 다른 직장이 있고 밤이나 새벽 시간에 아르바이트로 차량을 모는 청년이었다. 트래픽이 없는데도 1시간 반이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요금은 70링기트 (약 2만원). 지인의 얘기로는 일반 택시 요금의 반도 안 되는 요금이라 한다. 동남아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세계 3위 승차공유 서비스 업체로 등장한 그랩의 편의성과 경쟁력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그랩의 위력을 경험한 것은 이때뿐만이 아니었다. 휴양차 쿠알라룸푸프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깊은 시골의 여행지를 방문할 때도 그랩을 이용했다. 여행사가 제시한 금액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갈 수 있었다. 역시 신속했고 쾌적했다. 인적이 드문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휴양지에서 인근 마을 식당으로 갈 때도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게 되었다. 마치 현지인처럼 자유롭게 이동하고 즐길 수 있었던 게 진정한 여행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택시 운전사와 요금 시비를 벌이지 않아도 되고 대중교통 파악을 위해 고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이 없는 것이 좋았다. 갑자기 말레이시아라는 여행지가 매력적인 행선지가 되어 내년 겨울에도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한 혁신적인 서비스 산업, 특히 공유경제 산업은 이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파급 효과를 준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였다. 그랩이라는 카풀 서비스가 단지 교통 산업뿐 아니라 관광 등 여타 분야에서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고 상생의 틀을 마련한다는 점이다. 사실 7년 전 앤서니 틴이라는 젊은 청년이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한 그랩은 이제 중국의 디디추싱, 미국의 우버에 이어 세계 3대 차량공유서비스로 성장했고 이제 그 영역을 배송, 배달, 보험 등 핀테크에까지 넓히고 있다. 동남아 8개국 336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 중이고 택시뿐 아니라 오토바이, 리무진 등 다양한 운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와 힘든 경쟁을 하던 우버는 동남아에서 결국 그랩에 인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그랩의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SK텔레콤과 합작법인을 세워 동남아 지도 및 내비게이션 관련 산업에 진입했다. 그간 자신들이 전적으로 의존했던 구글의 지도 및 내비게이션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소프트뱅크, 도요타,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다투어 그랩과 손잡고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개척하는 데 열 올리고 있다. 이 모든 대단한 성공이 우리가 아직 낙후하다고 알려진 동남아의 말레이시아에서 한 젊은 청년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창업자이자 CEO인 틴은 자신을 보려고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한 지인이 택시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자 이에 착안해 재빠르게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고 결국 성공 신화를 이루었다.

한국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르다. 6년 전 우버가 처음 한국에 진출했으나 택시 업자들의 반발과 여러 규제 때문에 철수했다. 이후 다양한 서비스가 시도 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택시-카풀 사회적대타협기구가 기나긴 논의 끝에 극적으로 합의안까지 만들었으나 차량 공유경제는 아직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합의안 이행을 위한 실무기구뿐 아니라 법개정 작업도 여야간 이견으로 지난주 국회 본회의 안건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기존 업계의 반발을 정부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경제나 기술 수준에서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는 말레이시아가 그랩으로 성공을 하는 마당에 한국의 공유 서비스 산업이 아직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탄식이 앞선다.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중국도 공유경제에 있어 한국보다 훨씬 앞서가는 상황이고 보면 이러한 걱정이 무리한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의 특수성이 있다. 특히 한국 택시 업계의 열악한 현실은 승차 공유 서비스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대개의 택시 기사들, 특히 회사 소속 택시 기사들은 아직도 쥐꼬리만 한 수입으로 하루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당에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경쟁자가 이들의 몫을 상당 부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가 발전하는 많은 나라의 경우 기본적으로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 새로운 경쟁자가 새로운 기술로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이로 인해 생계가 어렵거나 실직을 하는 사태까지는 오지 않는다. 말레이시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전 세계는 지금 첨단 기술을 이용한 공유경제, 나아가서는 AI(인공지능)를 이용한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경제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낙오하면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되고 성공하면 어제의 패자가 오늘의 승자가 되는 현실이다. 말레이시아가 새로운 승자, 한국이 새로운 패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문제는 기존 질서의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수용하는 유연한 태도와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다. 승차 공유 사업의 경우 새로운 서비스는 도입하되 기존 사업자들의 손해를 당분간은 메꾸어주는 구조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정부의 지혜로운 정책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불친절하고, 바가지 요금을 씌우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택시이다. 인천 공항에서 강원도까지 외국인을 태워주고 수십만원을 받아내 처벌을 받은 택시 기사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한국 관광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른 것보다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도 승차 공유 사업의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3.7 카풀합의 거부, '타다' 추방 결의대회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의 '3.7 카풀합의 거부, 타다 추방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타다' 그림에 불꽃 스티커를 붙인 뒤 연막탄을 터뜨리는 화형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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