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에 강했던 경영자, 故 조양호 회장

2019-04-0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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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현지에서 숙환, 폐 질환으로 별세, 향년 70세

 

조양호 회장[사진=한진그룹 제공]


"신혼여행객들이 결혼식을 마치고 여유롭게 떠날 수 있도록 출발시간을 밤 시간대로 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몰디브 취항을 앞두고 고(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제안한 내용이다. 조 회장은 경영과 관련한 전 과정을 꿰뚫고 있는 '디테일에 강한 경영자'였다.
정석(靜石)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장남인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18년간 경영수업을 받은 뒤 1992년 대한항공 사장에 올랐다. 이후 1999년 대한항공 회장을 거쳐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다음 해인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구축하며 기업을 이끌어왔다. '기업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춰 가꿔나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아무리 2세라도 자격이 없으면 기업을 이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전문경영인 시대로서 실무를 모르고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며 "업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경영자의 기본조건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특히 항공사는 여타 제조업과는 달리 전문적인 경영 능력 없이 권위만을 가지고는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특수 업종이라는 것이다.

조 회장은 기체에 대해 항공 전문용어로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을 갖춘 실무형 리더였다. 취항지를 결정할 때 직접 나서기도 했다. 미국 취항지를 선정할 때 허름한 모텔에서 자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18일간 6000마일(9600km)을 손수 운전해 미국 곳곳을 살핀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40여 년간 전 세계를 누볐지만 그는 작은 도시 한 곳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베트남 하롱베이, 터키 이스탄불은 조 회장이 직접 발로 뛰어 하늘 길을 개척한 곳으로 꼽힌다.

조 회장은 최고경영자는 비전을 제시해 기업을 이끌어야 한다며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왔다. 2003년 2월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취임 3개월 만에 에어버스의 항공기인 A380을 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A380은 좌석 수 500석 이상의 초대형 항공기다. 당시 미국의 9·11테러 사태 여파로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항공 업황도 좋지 않았다. 주변에서 반대했지만, 그는 곧 대형 항공기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밀어 붙였다.

실제로 5년 후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점차 회복되면서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대한항공은 선발주한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최신 항공기를 도입할 수 있었다.

조 회장은 “미국식보다는 독일식 경영을 하라”, “시스템에서 움직이고 시스템으로 움직여라” 등의 말도 자주 했다. 똑같은 인력과 보유자재라도 최대한 활용해서 한진그룹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이며,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업무가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탄탄한 기업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또한 “쉼 없는 전진만이 그 격차를 줄이는 첩경이며 조금이라도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언제든지 도태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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