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로벌 증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유럽중앙은행(ECB) 등 글로벌 주요 중앙은행들의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 행보와 미·중 무역협상 기대감 속에 오름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미·중 무역협상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경제 지표가 악화하면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빨리 임박했다는 공포심이 시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경제 펀더멘털(기반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증시가 얼마나 더 오를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도 적지 않았다.
래리 해서웨이 GAM인베스트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브렉시트나 미·중 무역분쟁과 같은 대형 이슈는 해결되기는커녕 악화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제는 미국도 경기 둔화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금리동결에 머물지 않고 금리인하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됐다. 이 여파로 기준물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급락했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를 매수하면서 투자위험을 반영하는 국채 금리가 하락했다는 의미다.
급기야 22일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과 미국의 제조업 지표 부진이 겹치면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3개월물 국채 금리보다 더 낮아지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채권 만기가 길수록 투자 위험이 커져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게 보통이다.
미국 국채의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처음이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대표적인 경기 침체의 전조로 읽힌다. 1975년 이후 경기 침체 전에 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CNBC는 단기채 금리가 장기채 금리보다 높아지는 것은 시장이 현재 경기를 미래 경기보다 낙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거꾸로 보면 미래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얘기다.
미국 외에도 독일과 일본, 호주 등 선진국에서도 국채 금리가 동반 하락했다.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22일, 2016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25일 일본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0.09%까지 떨어지면서 2016년 9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고 로이터는 집계했다.
JP모건은 투자노트에서 "채권시장 움직임이 증시를 낙관하던 이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면서 "경제에 대한 확신이 들고 채권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을 때까지 증시에서 추가 랠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나올 경제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주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국의 지난해 4분기 성장률 확정치가 발표된다. 이번 지표는 세계 경제가 일시적인 부진을 겪는 것인지, 아니면 확실한 경기 둔화의 길을 가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WSJ는 예상했다.
미국의 작년 4분기 성장률 확정치는 오는 28일 나온다. JP모건은 종전 속보치인 2.6%에서 1.8%로 대폭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한동안 나홀로 성장세를 뽐냈던 미국 경제마저 급속한 경기 둔화에 직면했다는 근거로 쓰이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 공포를 더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