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의 골자는 무역금융 규모를 지난해보다 15조3000억원 늘린 235조원을 투입하고 수출 마케팅을 위해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수출기업 절반(4만2000개) 정도에 3528억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실적 둔화 등으로 자금난을 겪는 수출기업들을 위해 자금 지원을 통해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려주는 것과 수출 판로를 개척해 준다는 점은 환영하고 있다. 다만 한국 수출이 흔들리는 이유가 중국 등 세계 경기둔화와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단가 하락 등 외부 요인이 커 실효성에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9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기재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수출활력 제고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홍 부총리는 "수출 활력 제고를 위해 수출 전 과정에서의 무역금융을 대폭 보강할 것"이라며 "올해 대출·보증 등 무역금융을 당초 목표보다 3조원 추가해 총 235조원으로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다.
우선 금융지원을 살펴보면 정부는 당초 올해 2년 연속 수출 6000억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무역금융을 12조3000억원 늘리기로 했다가 최근 글로벌 경기둔화와 반도체 가격 하락 속에 수출에 빨간불이 켜지자 3조원을 더 증액했다.
또한 수출기업의 원활한 자금흐름을 돕기 위해 수출단계(계약-제작-선적-결제)별로 8개 무역금융 지원 프로그램(35조7000억원)을 신설하거나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수출 선적 이후 수출채권을 조기 현금화할 수 있는 1조원 규모의 보증 프로그램을 4월 중 신설한다.
과거에는 이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2014년에 3조5000억원 규모를 지원할 정도였는데, 지난해 지원액은 900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수출채권 현금화가 위축됐었다. 이에 따라 수출입은행의 기존 수출채권 직접 매입도 4조9000억원 규모로 확대된다.
수출기업에 수출용 원·부자재를 납품하는 간접수출 기업들의 매출채권도 현금화가 가능하게끔 3000억원 규모의 특별보증 프로그램을 이달 중 새로 만든다. 수출입은행의 매출채권 기반 대출도 1조2000억원으로 확대된다.
이와 함께 수출실적, 재무신용도와 관계없이 수출계약서만 있으면 원자재 대금 등 상품 제조에 필요한 돈을 은행에서 대출받도록 보증하는 '수출계약 기반 특별보증' 제도가 신설된다.
일시적인 신용도 악화로 자금난을 겪는 유망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올 2분기부터 1000억원 규모로 시범 시행하고, 지원효과·리스크 분석 등을 통해 확대 추진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이같이 무역금융과 수출마케팅에 집중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존 주력산업 중심의 수출을 넘어 수출 포트폴리오 다각화도 꾀한다.
6대 신(新)수출성장동력 사업(바이오·헬스, 이차전지, 문화·콘텐츠, 한류·생활소비재, 농수산식품, 플랜트·해외건설)을 중장기적으로 육성하고 이달부터 분야별 세부 육성대책을 순차적으로 추진한다.
이 밖에 신남방·신북방 등 신흥시장 진출지원도 대폭 강화하고, 수출 주체인 기업 성장 단계별(스타트업→내수·수출 초보기업→중견기업)로 차별화된 맞춤형 지원을 실시한다.
◆중국 등 세계 경기둔화·반도체 단가하락 등 외부 요인 큰데 효과는 '글쎄'
현재 한국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중국 등 세계 경제 둔화, 반도체 단가 하락 등 외부 요인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 같은 정부 대책이 당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을 포함한 중국, 미국, 독일 등 세계 수출 상위 10개국 수출 실적은 일제히 감소했다. 보호무역주의 확대와 글로벌 경기 하강 등의 요인으로 국가 간 교역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 수출이 작년 12월(전년 대비 -1.3%)을 시작으로 올해 1월(-5.9%), 2월(-11.1%)까지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간 것은 수출 경쟁력 약화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러한 환경적 요인들이 수출 하강을 이끌고 있다.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가 계속되면서 대중 수출이 최근 4개월 연속 감소했고, 최근 유럽연합(EU)의 경제성장률 전망 하향조정까지 겹치면서 전반적으로 수출이 줄었다.
전체 수출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1등 품목인 반도체 수출의 경우 작년 말부터 이어진 가격 하락세와 수요 부진으로 지난달 24.8% 감소했다. 주력 제품인 D램(8Gb) 메모리 가격이 전년 대비 36.8% 급락하고 낸드(128Gb)는 25.2% 감소하는 등 수출단가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함께 '수출 효자품목'인 석유제품(-14.0%), 석유화학(-14.3%)도 수출 감소세를 면하지 못했다. 국제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미국발 공급물량 증가 등으로 수출단가가 계속 하락한 탓이 컸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커 수출 상승 반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학계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수출 대책은 수출기업 애로 해소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세계경제 둔화, 반도체 가격 및 유가 하락 등에 따른 수출 부진을 당장 해소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대책에서 반도체 등 기존 주력품목의 수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