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부시는 하고 트럼프는 못한다

2019-02-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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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가 달러의 적이다②


궈핑 화웨이 순환회장이 “미국 시장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그는 25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 MWC 2019에서 “화웨이 기술력은 경쟁사보다 12개월 가량 앞섰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은 반(反) 화웨이 연대를 만들어 5G 장비 불매를 강요하고 있다. 호주가 동참했다. 영국과 뉴질랜드가 최근 화웨이 배제 방침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반 화웨이 연대가 와해되고 있다. 통신업체들이 반발하면서다. 싸고 기술도 앞서는 데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궈핑 회장의 말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세계경제질서의 붕괴를 의미한다. 세계경제는 지난 한세기 중국 생산-미국 소비를 축으로 성장해 왔다. 달러를 매개로 한 자유무역질서다.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The Absent Superpower)’에서 자유무역질서는 미국이 안정적 석유공급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라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를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미국은 해상권을 장악해야 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동맹국에게 시장을 내줬다는 것이다.

셰일 가스 생산으로 석유 자립에 성공한 미국에게 지금의 안보 체계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시리아 등 중동에서의 미군 철수 등이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해상권 장악이 필요가 없어진 만큼 동맹국에게 시장을 내줄 이유도 더이상 없다. 결국 셰일가스 혁명이 자유무역질서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피터 자이한은 국무부를 거쳐 민간 정보기업 스트랫포 부사장을 지냈다.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이 시장을 무기로 중국을 압박하는 형태다. 생산공장 중국이 내다팔 미국 시장 없이는 버티지 못할 것이란 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다.

궈핑 회장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가진 강력한 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궈핑 회장의 발언이 중국 경제 전반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이제 공은 미국 손에 넘어갔다. 중국 없는 미국의 달러 시스템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트럼프 대통령이 찾아야 한다.

피터 자이한의 관점은 미국의 석유안보와 세계 자유무역질서의 연관성을 꿰뚫어 봤다는 점에선 주목할 만 하다. 하지만 다른 핵심을 간과했다.

석유안보는 단순히 석유수급 문제가 아니다. 기축통화 시스템의 근간이다. 전세계 석유 거래는 달러로만 이뤄진다. 1974년 닉슨 미국 대통령과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맺은 이른바 달려 협약이다. 1944년 브레튼우즈체제로 달러는 명실상부 기축통화가 됐다. 달러를 가져오면 미국 정부가 금으로 바꿔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달러는 영국 파운드로부터 기축통화 자리를 빼앗았다. 하지만 달러를 너무 많이 찍었다. 금고에 금이 바닥이 났다. 금 대신 석유로 달러를 바꿔주는 시스템으로 이를 대체한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서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기축통화의 패권을 내놓겠다는 의미다. 인근 독일·프랑스, 멀게는 한국·일본이 사우디에서 달러로 산 석유를 실어나를 수 없다는 얘기다. 셰일가스로 인한 석유 자립으로 미국은 석유시장의 VVIP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미국과 사우디간 달러 동맹은 이미 균열 조짐이다. 사우디 실권자 빈살만 왕세자가 얼음을 깼다. 빈살만은 지난 18일과 22일 파키스탄과 중국을 잇따라 방문, 총 480억달러(약 54조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핵심은 투자 대상이다. 80억달러는 파키스탄 남부 과다르 항구 건설에 쓰인다. 중국 랴오닝성 판진에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에 280억달러가 투입된다.

중국은 세계 1위 석유 수입국이다. 2015년 기준 하루 평균 740만배럴을 수입했다. 중동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 석유 안보는 이제 미국이 아닌 중국 이슈다. 중국은 과다르 항에서 시작해 중국 서부를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에 파키스탄과 합의했다. 과다르 항에 중국 군대를 주둔하는 방안도 논의중이다. 일대일로의 핵심이다.

송유관 건설 계획은 2006년 후진타오 주석 때 시도됐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중재로 후진타오 주석과 압둘 아지즈 국왕이 사우디-중국간 송유관 건설에 합의했다. 당시에도 랴오닝성 다롄에 52억달러(약 5조원) 규모의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당시 아들 부시 대통령이 압둘 아지즈 국왕을 클로퍼드 목장으로 불렀다. 공교롭게 둘이 만난 직후 송유관 건설 사업이 돌연 중단됐다.

빈살만 왕세자는 다르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카슈끄지 CNN뉴스 기자를 토막내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미국 의회가 이를 비판한 직후 파키스탄과 중국에 대규모 투자 선물 보따리를 푼 건 우연이 아니다.

시장 상황도 달라졌다. 셰일 혁명으로 석유 자립에 성공한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 반면 중국은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화웨이는 중국의 산업고도화, 즉 제조 2025 전략의 결과물이다. 하나의 상징이다. 상징이 미국 시장은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반면 중국 없는 미국은 생산기지 역할을 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 모디 총리 의전에 만전을 기하는 이유다.

화폐전쟁 저자 쑹웬밍은 최근 책 관점에서 과다르 항구를 미국 패권전쟁의 충돌 지점으로 지목했다. 횡으로 송유관을 건설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와 인도를 이용해 이를 위아래서 누르려는 미국은 필연적으로 과다르 항구에서 부딪힐 것이라는 게 그의 관점이다. 그는 이를 석유전쟁이라고 했지만 본질은 기축통화 자리를 둘러싼 화폐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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