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13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의 유품이자 주미대한제국공사관과 관련된 외교자료 8점을 기증받아 공개한다.
‘미국공사왕복수록’ 문서에는 당시 조미 간 현안사업 중 뉴욕 법관 등이 ‘조선기계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 설치 등 3건을 추진하기 위해 제안한 규칙과 약정서 초안이 수록돼 있고, 이중 그들이 경인선 설치를 제안한 사실과 계약서인 ‘철도약장’ 초안이 함께 수록돼 주목할 만하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경인선은 1896년 조선이 미국인 모스에게 부설권을 허가했으나, 모스가 이를 1897년 5월 다시 일본 측에 넘기면서 결국 1899년 9월 일본 측이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자료에서는 1888년 이미 조선이 철도부설 사항을 주미공사관을 통해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었고, 관련 계약서의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미국서문'에서 중국과 관련된 내용도 주목을 끈다. 본문에는 "중국공사가 체례 등사로 매번 트집을 잡아 정말 소위 진퇴유곡의 처지이다"라며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중국공사가 매번 체제사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고집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혹 서로 부딪히면 우리나라가 천진으로부터 곤란을 당할까 두렵다"고도 했다.
문서에는 또 "중국공사 사이에는 허다하게 고집하는 단서가 있다. 중국공사는 매번 체제로 우리나라공사의 위에 서고자 하고, 우리공사 역시 그 밑에 있지 않으려고 한다. 대저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공사는 30여 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공사와 서로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이는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1888년 박정양이 병으로 임시 귀환하므로 서기관 이하영을 대리공사로 임명한다고 미국 정부에 통보한 문서도 포함돼 있다. 박정양은 중국 측의 파미 허락조건이었던 '영약삼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재 기간 동안 내내 중국의 강력한 항의와 압력으로 시달렸다고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설명했다.
1888년 11월 12일 정부는 위안스카이의 압력에 굴복해 박정양에게 소환명령을 내리면서 알렌을 대리공사로 임명했다. 박정양은 조선인 관원이 있는데도 외국인을 대리로 삼는 것이 구차스럽고 다른 나라의 비웃음을 살 염려가 있다는 이류로 알렌 대신 그보다 지위가 낮은 서기관 이하영을 추천해 허락을 받아냈다.
1889년 참찬관 알렌이 워싱턴을 떠나 도쿄에 머물고 있는 박정양에게 자신의 권유로 영약삼단을 어겼음을 입증하는 편지도 포함돼 있다. 박정양은 중국이 조선을 속방으로 대외적으로 각인시키려던 '영약삼단'을 거부하고 자주외교를 펼쳐 소환됐는데 알렌은 박정양이 귀국 후 중국의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을 염려해 영약삼단의 위반 과정을 적으면서 자신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알렌 자신이 위반의 책임을 지겠다는 선의도 있지만, 이를 자신의 공으로 내세우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 교수는 해석했다.
이번에 공개하는 자료들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복원하며 고증 사료를 찾는 과정에서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으로, 그동안 이상재 선생의 종손인 이상구(74)씨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간직해오다 이번에 기증한다.
이상재 선생은 1887년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돼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와 함께 1888년 1월 미국 워싱턴에 들어갔다가 같은 해 11월 박정양 공사와 함께 다시 귀국할 때까지 현지에서 주미공사관을 개설하는 등 공관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번에 공개하는 자료들은 이 시기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증 자료는 문헌자료 5점과 사진자료 3으로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은 그간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최초의 자료다. 이들 자료는 당시 미국과 협상 중이던 중요 현안업무와 공사관의 운영, 공관원들의 활동상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존 유일의 외교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공관원들의 ‘업무편람’ 성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1883년 미국 아더 대통령이 초대 주한공사 푸트를 조선에 파견하며 고종에게 전달한 외교문서를 비롯해, 박정양 공사가 미국 정부 또는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각종 문서들, 주미공사관을 통해 추진했던 조선왕조와 미국정부 간 각종 현안사업과 관련된 문서들, 업무수행에 필요한 각종 비망록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서간’은 이상재 선생이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작성했던 편지 38통을 수록하고 있는 편지모음으로 이상재 선생이 주미공사 서기관으로 미국에 파견된 기간 동안 부모의 안부를 묻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논하는 등 집안일과 관련된 것이지만, 주미공사관 운영 상황, 미국에 주재하는 동안 활동하거나 견문한 사항 혹은 느낀 점 등을 부분적으로 기록해 당시 공사관의 실상, 그의 활동상과 미국관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이번 이상재 선생 유품자료가 19세기 조선왕조의 생생한 대미외교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다”라며 “‘미국공사왕복수록’, ‘미국서간’이 기존에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최초의 발굴 자료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관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관원이 직접 기록한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