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그런 여행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서울 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누구나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여행지다.
경성감옥은 1912년 9월 3일 서대문감옥으로, 1923년 5월 5일 서대문형무소로 변경됐다. 이후에도 수차례 변경을 거듭했고 1967년 7월 7일 서울구치소로 변경됐다. 서울구치소는 1987년 11월 15일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됐다.
◆일제가 독립운동가 취조 과정에서 자행한 고문 밀랍인형으로 재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1987년 감옥 운영 기간 동안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제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이후 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희생당했던 현장이다.
형무소역사실에선 서대문형무소의 변화 과정과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운용 실태, 해방 이후 독재정권의 민주인사 탄압 실태를 전시하고, 관련 기록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영상실에선 1908∼1987년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와 그 의미를 영상으로 상영하고 있다. 상영시각은 매시 정각 및 30분이고 상영시간은 7분이다.
2층에는 3개의 민족저항실이 있다. 민족저항실Ⅰ에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1919년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독립운동과 일제의 탄압 실상이 전시돼 있다.
민족저항실Ⅲ에는 1919년 3·1운동 이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독립운동과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 모형이 전시돼 있다. 서대문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 자료 검색도 가능하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가장 잘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서대문형무소역사전시관 지하고문실과 사형장일 것이다.
지하고무실에는 일제가 독립운동가 취조 과정에서 자행한 고문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존 독립운동가들의 고문 육성증언을 통해서도 식민지 통치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사형장 앞에 높이 30m의 ‘통곡의 미루나무’
물고문은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 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마구 들이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해 고통을 줬던 고문이다. 이 고문을 당하면 폐에 물이 차서 흉막염에 걸려 매우 고통스럽게 죽기도 했다. 2017년 12월 개봉한 영화 ‘1987’에 나오는 고 박종철 열사를 죽게 한 물고문이 떠오른다.
상자 고문은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해 고통을 줬던 고문이다.
벽관 고문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해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줬던 고문이다.
사형장은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장소다.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구성된 일본식 목조 건물이다. 1923년에 세워졌고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격리됐다. 사형 장치는 교수형 집행을 위한 개폐식 마루판과 교수줄, 죄수 가림막 뒤쪽에 위치해 마루판을 밑으로 내리는 레버 장치로 구성돼 있다. 마루판 아래 지하공간은 시신 수습실로 사형수의 사망 여부를 확인했다.
사형장 앞에는 높이 30m의 ‘통곡의 미루나무’가 있다.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됐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이 나무를 붙들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전해져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옥사에는 독립운동가들 사이의 암호통신인 ‘타벽통보법’, ‘감옥 내 독립만세운동’ 등이 재현·전시돼 있다. 수감자 운동장인 격변장과 취사장 등도 복원돼 있다.
3.1절과 이어지는 주말 연휴에 1박 2일 여행을 하고 싶다면 충청남도 천안시가 좋은 여행지가 될 것이다. 천안시에는 ‘유관순열사 사적지’와 ‘독립기념관’ 등 3·1절에 가 볼 만한 명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