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립대인 주남대학교에는 극소수 교수들만을 위한 성(城)이 있다. 서울 근교 숲속, 골프장과 파티 홀, 게스트하우스까지 갖춘 휘황찬란한 유럽풍 타운하우스 ‘SKY 캐슬’이다. 이 대학 부속병원 의사들과 판·검사 출신 로스쿨 교수 등 대한민국이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층이 모여 사는 이곳에선 ‘서울의대 입시 전쟁’이 벌어진다. 죽기살기, 이 전쟁을 그린 ‘희비극’이 바로 ‘SKY 캐슬’(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영어 앞 글자를 딴 SKY를 제목에 내걸며 고액 사교육과 입시비리 등 교육문제를 주로 다룬다. 나아가 상류층 사회의 위선과 허위, 병원·의료계 비리, 자살, 장애인 격리 등 우리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병리현상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생생한 증언과 실제 사건·사고들이 녹아들어 있다.
스카이캐슬은 아들을 서울의대에 합격‘시킨’ 엄마의 자살로 시작한다. 예비 서울의대생 아들은 “서울의대 합격증 줬으면 됐잖아. 당신 아들로 사는 거 지옥이었어···”라며 부모에게 복수한다. 유현미 작가는 ‘대한민국 부모-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이승욱 등 공저)라는 책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엄마의 의지로 삼수까지 해 의대에 간 아이는 ‘당신의 아들로 산 시간은 지옥이었습니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세요’라는 쪽지만 남기고 부모와 인연을 끊었다."
시험지를 훔쳐 전교 1등이 되는 것은 기시감(旣視感, 처음 오는 곳이나 처음 만나는 장면·사람인데 어디선가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난해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소문이 퍼져, 현재 법원까지 가 있는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 의혹 사건’이다. 작년 7월 중순 숙명여고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이 학교 교무부장의 두 딸, 2학년 재학생인 쌍둥이 자매가 각각 문과·이과 전교 1등을 했다. 드라마에서는 고교 수석 입학생이 전교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시험지 유출이 일어나는데, 숙명여고 쌍둥이들은 1학년 1학기(각각 전교 59등, 121등)에 비해 비약적으로 성적이 올라갔다. 또 스카이캐슬의 부모와 학생은 ‘양심선언’을 한 반면, 숙명여고 사건 관련 가족들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교육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최근 한 말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하루 15시간 학습노동에서 우리 아이들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스카이캐슬을 빼놓지 않고 본 한 예비 고교생은 “이런 교육제도가 계속되면 우리는 망한다”고 절망한다. 워라밸(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노동과 개인 삶의 균형)이 일하는 성인에 해당하는 말이라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스라밸(스터디와 라이프 밸런스·학습과 개인 삶의 균형)을 보장해줘야 한다.
성공한 인생에 대한 질문의 답은 교육에만 있지 않다. ‘성공한 인생=피라미드 꼭대기’가 아닌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제법 오래 걸리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