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20주년 맞은 우리은행…되돌아보는 국내 은행 100년史

2019-01-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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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한성은행·대한천일은행 시작으로

IMF 사태로 부실은행간 통폐합…지금의 모습 갖춰

대한천일은행 본점 건물(현 우리은행 종로지점) [사진=우리은행 제공]


"화폐융통은 상무흥왕에 근본이므로 은행을 설립코저하여 청원하오니…."

1899년 1월 대한천일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의 은행설립청원서 일부다. 금융위원회에 제출하는 '은행설립인가 신청서' 격인 이 문서에는 '화폐경제를 발전시켜 국가를 부강하게(상무흥왕, 商務興旺)' 만들고자 하는 선조들의 뜻이 담겨있다.
우리은행이 4일 창립 120주년을 맞으면서 4대 시중은행의 창립과 역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일제시대 설립된 한성은행과 대한천일은행을 시작으로 광복과 경제개발을 거치며 금융사의 골격을 갖춰갔다. 100여년이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1999년 대우 사태를 겪으면서 부실 은행들간 통폐합도 숨가쁘게 이뤄졌다. 4대 시중은행은 수많은 흡수·합병을 통해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대형화됐다.

◇ 고종황제가 만든 우리은행
우리은행은 120년 전인 1899년 대한제국 시절에 문을 연 대한천일은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종황제가 황실 자금을 자본금으로 납입하고, 정부 관료와 조선상인이 주주로 참여한 국내 최초의 민족자본 은행이다.

새해 첫 날 우리은행장들이 홍유릉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홍유릉에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능이 있다.

대한천일은행은 일제가 '대한(大韓)'이나 '한국(韓國)'이라는 용어를 금지함에 따라 1911년 조선상업은행으로 개칭한 뒤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변경됐다.

상업은행은 1999년 한일은행과 대등합병하며 한빛은행이 됐다. 대한천일은행의 창립일은 1899년 1월30일이지만, 우리은행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된 한빛은행 출범일인 1월 4일을 창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은행은 2001년 평화은행까지 흡수합병하면서 완성됐다.

우리금융지주는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사로 출범했으나 공적자금 회수 과정에서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비은행부문과 글로벌 확대 제약 등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주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이번달 11일 4년 만에 지주사로 부활하게 된다.

◇ 서민금융 전담으로 했던 KB국민은행
시중은행 1위로 발돋움한 KB국민은행은 1963년 출범한 서민금융 전담 국책은행이었다. 담보능력과 신용력이 미약한 일반국민과 소기업자에게 금융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공기업으로 출범해 1995년 민영화 됐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장기신용과 대동은행을 흡수한 데 이어 동남은행을 흡수했던 한국주택은행과 2001년 통합하면서 현재의 KB국민은행이 탄생하게 됐다.

국민은행이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5년 전 있었던 'KB사태'는 금융권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2014년 국민은행은 주전산 기기를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하려 했다가 임영록 당시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당시 국민은행장이 정면충돌하며 내분이 발생하는 혼란을 겪어야 했다. 당시 이 사건은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얽히면서 대형 금융게이트로 발전했고, KB금융그룹의 고위층이 대거 물러나는 후유증을 남겼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내부에서 빠르게 수습에 나섰고, 2017년 국민은행이 9년 만에 1위 신한은행을 넘어서는 실적을 거뒀다.

◇ 조흥은행과 합병으로 거대 신한은행 탄생
신한은행은 지난 2006년 4월 조흥은행을 흡수합병하면서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20년을 갓 넘은 '막내둥이' 신한은행이 100년 역사의 조흥은행을 집어삼킨 것이다.

조흥은행은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부동의 1위 은행으로 군림했다. 1897년 설립된 한성은행이 모태다. 조선은행이 한성은행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나 곧 폐업해 한성은행이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온 최초의 근대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신한은행은 1982년 재일상공인들이 돈을 모아 설립한 후발 은행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한 조그만 은행에 취직하려는 이들이 없어 전국 각지에서 경력사원들을 스카우트해야 했다.

신한은행은 조흥은행과의 합병으로 신한은행의 창립년도를 100년 가까이 끌어내릴 수 있었지만,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강조하는 것보다 통합을 선택했다. 창립기념일을 조흥은행과 통합한 2006년 4월1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옛 한국외환은행 본점) [사진=하나금융그룹 제공]


◇ 수많은 인수합병로 탄생한 'KEB하나은행'
KEB하나은행도 복잡한 합병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나은행은 단자회사인 한국투자금융에서 출발해 1991년 은행으로 전환했다. 1998년 충청은행을 인수한 이후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과 합병하며 몸집을 불렸다.

2015년에는 2012년 인수했던 외환은행과 뒤늦게 합병한 이후 KEB하나은행으로 사명을 바꿔 현재에 이르렀다. 하나은행 앞에 붙는 KEB는 Korea Exchange Bank(한국외환은행)의 약자다. 외환은행은 한국은행 외환관리과에서 1967년 독립한 이후 4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이지만, 두 회사의 통합은 애초부터 진통이 예상됐다. 단자회사에서 출발한 하나은행과 외국환 전담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은 문화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급여체계와 인사, 복지 수준은 물론 정서도 달랐다. 통합 이후 최소 2년간은 화학적 통합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초대 통합행장인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양 노조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설득했고,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함 행장의 노력으로 공식 출범 1년여만에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노조가 통합을 전격 발표하며 화학적 통합을 조기에 이뤘고, 은행간 통합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게 됐다.

 

[사진=농협은행 제공]


◇ NH농협은행·IBK기업은행
농협은행은 1961년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을 통합, 정부의 농업·농촌개발사업을 대행하는 준정부기관으로 설립됐다. 그 전에도 이동(里洞)과 시군에 농업협동조합이 있었지만, 농민들의 이해 부족과 자기 자금 부족 등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과도 분리됐다. 정부는 농업은행의 일부 자산과 부채를 떼어내 기업은행을 만들었다. 농업은행이 전국 도시에서 운영하던 지점 31곳도 기업은행이 승계 받았다. 기업은행의 모태가 농업은행인 것이다.

농협은행과 기업은행의 모태가 같지만 60년 가까이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두 은행은 국내 농업과 중소기업을 책임지는 은행으로 자리 잡았다.

NH농협은행의 현재 모습은 2012년 갖추게 됐다. 농협법 개정에 따른 신용·경제 분리방침에 의해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금융지주가 분리됐고, 농협은행은 농협금융의 자회사로 성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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