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맵'의 반출을 허용하고 '구글세' 부과도 어려워지게 만들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자상거래 통상규범 협상 본격화 돼 정부가 이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디지털 무역’의 규칙을 정하는 이 협상에서는 우리 정부가 불허한 구글의 지도 반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국경 간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기 때문에 협상 결과가 국내 IT(정보기술)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공청회는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통상협상을 시작하기 전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다.
협상에서 어떤 사안을 논의할지는 아직 WTO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통상 전문가들은 국경 간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과 ‘서버 현지화’ 금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안은 아마존과 구글 등 전자상거래 분야 최고 기업을 보유한 미국이 자국 기업을 위해 밀어붙이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규정은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보다는 개인 정보보호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국내에서 원격진료를 하지 못하고 정부가 구글의 국내 지도 데이터 반출을 불허한 전례를 보면 국경 간 데이터 이동이 당장은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가 국내에 사업장(서버)이 없는 해외 IT기업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구글세'의 국제 논의 참여를 주요 경제정책 과제로 제시한 것도 서버 현지화 금지와 거리가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 협상이 타결되면 구글의 지도 반출을 막는 것도, 구글세를 부과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규모가 더 큰 미국 IT기업의 국내 시장 잠식을 가속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경쟁의 룰을 유리한 방향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2015년 세계 전자상거래 거래액 중 미국의 비중이 28%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일본(10%), 중국(8%), 한국(4%)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IT 정책 환경이나 인프라 구축을 위해 우리도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의 요구는 정부가 당장 받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WTO 회원국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11개국이 참여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국경 간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과 서버 현지화 금지를 명시했다.
미국은 작년 타결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서도 이 두 사안을 관철했다.
반면 구글세에 적극적이며 최근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시행한 유럽연합(EU)은 제한 없는 데이터 이동에 반대하고 있다.
'디지털 주권'을 주장하며 사이버보안법을 통해 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중국은 미국과 대척점에 있다.
WTO 차원의 협상은 모든 회원국 합의가 필요해 일부 국가가 반대하면 타결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자상거래 협상은 전체 회원국이 아닌 협상에 동의하는 국가만 참여하는 복수국간 협상으로 추진되고 있다.
2017년 12월 우리나라를 포함한 71개 회원국이 전자상거래 협상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냈지만, 중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통상 당국은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전자상거래 규범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작년 4월 기자 간담회에서 "디지털 통상 시대에는 데이터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들과 디지털 통상을 중심으로 하는 '메가 FTA'를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앞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전자상거래 통상 규범에 대한 공식 입장을 수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