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안전한 선택'만 할 법한데도 하정우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작업을 찾아 헤맨다. 이 역시 자신을 '믿고 보는' 관객을 위함이다.
그린 매트 위 펼쳐진 지옥(영화 '신과함께')에 뛰어들었고 총자루를 들고 전장(영화 'PMC:더 벙커')을 누비기도 했다. 기존 한국영화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 하정우는 계속해서 새로운 영역을 찾아 나서고 끊임없이 걸을 예정이다.
최근 아주경제는 영화 'PMC: 더 벙커'에서 캡틴 에이헵 역을 맡은 하정우와 만났다. 글로벌 군사기업(PMC)의 캡틴 에이헵(하정우 분)이 CIA로부터 거액의 프로젝트를 의뢰받아 DMZ 지하 30m 비밀 벙커에 투입되어 작전의 키를 쥔 닥터 윤지의(이선균 분)와 함께 펼치는 액션영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인터뷰에 녹여냈다.
영화가 개봉했다. 어떻게 보았나?
- 재밌게 봤다. 장점이 확실한 영화기 때문에 기대해볼 만하다. 일단 타격감이 있고 생동감이 있어서 에이헵 옆에서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느낄 거 같다. 얌전한 영화는 아니라서. 하하하. 우당탕탕 하면서 같이 타격감을 느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독특하기도 하고.
'더 테러 라이브' '터널'에 이어 또다시 고립당하는데
- 그렇게 됐다. 그러나 '더 테러 라이브' '터널' 등을 떠올리며 연기하지는 않았다. 특별히 차별점도 없고. 다른 게 있다면 언어가 한국어가 아니라는 점? 상황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표현 방식이 나온다.
영어 대사는 어땠나?
- 영어 대사가 능숙하지 않다면 관객의 몰입에 방해가 될 거로 생각했다. 익숙한 얼굴의 한국 배우가 낯선 언어로 연기하는 게 몰입도를 떨어트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프롤로그서부터 우리와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해 저항감이나 이질감을 느끼게 할 거라고 보았다. 관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얼마나 빨리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느냐였다.
관객이 영화 안으로 끌려들어 가는 지점은 어디라고 보나?
- 영화 초반부 회담장으로 가는 길목. 사전정보와 캐릭터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이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장면 아닌가. '소셜네트워크'에서도 긴 대화 장면이 있듯 우리 영화에도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영어 대사를 자연스레 익히는 작업도 쉽지 않았겠다
- 그렇다. 그들이 쓰는 말들, 독특한 화법 등을 술술술 해야 하니까. 먼저 대사를 줄줄 외웠고 촬영 두 달 전부터는 체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두 번째 사랑'에서도 영어 대사를 했으니 '방법'은 이미 익힌 셈 아닌가
- 그렇다. '아가씨'에서도 일본어를 익혔으니까. 외국어를 익히고 접근하는 건 방법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대사량도 많고 감정도 있는데다가 스피드도 빨라서 그냥 단순히 물리적 시간을 투자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에이헵의 팔에 그려진 문신은 어떤 의미인가? 직접 디자인을 했다고 들었는데
- 별 의미가 없다. 하하하. 타투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많은 고민을 했다. 영화에 나온 타투가 최종 시안인데 에이헵 입장에서 사건이 해결될 때마다 하나씩 훈장처럼 수여한다는 설정이다. 제가 디자인한 건 상형문자인데 타투 디자이너와 상의하다가 결국 제가 만들게 됐다. 당시 심장박동수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서 임의로 제가 그려놨는데 타투 디자이너가 '이대로 가면 될 거 같은데요?'락 해서 그대로 그리게 됐다.
이번에 호흡을 맞춘 이선균은 어떤 배우인가?
- 너무 솔직하고 꾸밈없고 희한한 사람. 필터링이 아예 없다. 하하하. 느끼는 대로 바로 말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고 편하다. 둘 다 농구를 좋아해서 각자 친구들과 모여 경기도 뛰었다. 이제는 저와 형을 빼고서도 친구들끼리 만난다고 하더라. 그런 것만 보아도 우리 둘은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주연배우의 무게감과 제작자로서의 무게감은 다른가?
-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지난 5년간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봤기 때문에 '이게 안 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보통 연기를 할 때는 배우의 공간만 인식하는데 (제작자로 참여하면) 카메라 뒤 풍경도 알게 되는 거다. 배우와 마찬가지로 스태프들도 똑같은 긴장감을 가지고 카메라 뒤에 있다는 것 말이다.
연기, 연출, 그림부터 에세이까지. 다양한 부문에서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 그렇다. 기대 이상으로 잘 나가고 있다. 출판업계가 불황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출판사 쪽에서 '책이 많이 팔리고 있다'고 말해주니 '놀라운 일이구나' 싶다.
하정우에게 '걷는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인가?
- 감각을 계속 유지해주는 거다. 밖에서 걸으면 계절이 더운지, 추운지,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직접 느낄 수 있다. 보통 다들 실내에서 생활하니까. 하지만 옛날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았을 거 아닌가. 더위, 추위도 맞아가면서 사는 게 느낌과 감각을 유지하는 데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젊은 감각에 예민하다는 생각도 든다
- 그러려고 한다. 요즘은 유튜브를 보면서 (젊은 감각을) 익힌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재밌어 하는 게 궁금하니까. '뭐가 핫해?' 물어서 바로 검색해서 본다. 요즘은 더블비와 장삐쭈라는 유튜버의 콘텐츠를 보고 있다. 정말 기상천외한데 이게 엄청나게 인기라고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유튜버 장삐쭈를 좋아한다. 이렇게 빠른 대사와 코미디 스타일에 열광한다니.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딱 제 스타일이다. 자매결연 수준. 영화 '롤러코스터'도 그런 식으로 만든 건데 뭔가 제 의도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삐쭈 때문에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