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 최저임금 인상 등과 같은 가지만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제조업의 경쟁력을 살려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제조업이 무너지면 지역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며,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 갈수록 기업가 정신이 고갈되고 창업은 꽁꽁 얼어붙는다. 되는 것이 없는데 누가 기업을 하려고 할 것이며, 해외 시장에 하나의 상품이라고 더 팔려고 뛸 것인가 하는 심각한 국면에 직면하게 된다. 이미 늦었지만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꽁꽁 얼어붙고 있는 제조업 현장의 분위기를 살리는 일이다. 다시 말해 기(氣)를 회복하도록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경쟁 각국과 비교하여 우리 기업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잣대나 규제들을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임금은 철저하게 생산성과 연계시켜야 하며, 기업은 보다 투명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정치적 리더십이 복원되어야 하고 정부는 효율성을 신속하게 회복해야 한다.
제조업의 미래를 위한 로드맵도 다시 짜야할 것이다. 중국의 약진과 일본의 부활은 우리 제조업의 위상 점검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근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제조업 경쟁이 3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경쟁적 구도라는 2개의 라운드를 거쳐 첨단산업 제조 경쟁이라는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은 첨단 제조업 생산에서 미국에 이어 2위로 부상하고 있으며, 일본은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중국과 다른 우월적 기술 분야의 접목에서 성공하고 있기도 하다. 전통 제조업은 물론이고 미래 먹거리 싸움인 첨단 제조 경쟁에서도 이들에 비해 훨씬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 제조 업종인 자동차는 일본에 현저히 밀리고 있고, IT 강국이라는 면모도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이미 중국에 내주었고, 스마트폰도 내년이면 1위 자리를 내줘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가격까지 갈수록 하락하고 있어 주력 제조업의 수명이 거의 바닥 수준에 왔다는 것을 냉엄하게 수용해야 한다.
자칫하면 이 험난한 판에서 우리만 비참한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 일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방법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고, 둘은 협력과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고, 셋은 하나와 둘을 결합하여 생존 틈새를 노리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생결단의 각오로 그렇게 하려면 우리 제조업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험악한 경쟁 구도 하에서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력 산업과 미래 산업의 포트폴리오를 전략적으로 구성하여 때로는 주도권을, 경우에 따라서는 틈새를 파고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3국이 모든 분야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치킨 게임을 벌이면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에 주력해 왔다. 일본이 먼저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있고, 이제 우리가 벼랑 끝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장래 언젠가는 중국도 이러한 수렁에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도 하다.
이미 시작된 글로벌 첨단 제조 경쟁은 아직 초입 단계에 불과하면 한동안 거침없이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지적재산권 옥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유럽이나 일본도 이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이 험난한 판에서 우리만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는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모듈화·표준화의 급진전으로 공급 과잉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기존 제품 혹은 기술의 혁신에 한계가 표출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글로벌화·컨버전스 등의 심화로 지역·시장·산업 혹은 사업 간의 경계가 빠르게 붕괴되고 있기도 하다. 더 이상 과거의 영역에서 머물러 있으면 미래를 볼 수 없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고 시대에 부응하는 한국형 혁신 모델이 나와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금융 부문의 위기도 쓰라리긴 하지만 만회가 가능하다. 반면에 실물 경제가 허물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 인식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 제조업이 반전할 수 있느냐 하는 기로가 내년이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