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누군가의 선택으로 본질이 바뀐다. 본질이 바뀐다는 건 쓰임새가 달라지고 용도가 변한다는 의미다. 건강하게 변화되고 생기 있게 달라진 본질은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밋밋함에 생기를 더해준다.
존재하던 공간의 본질이 누군가의 자유의지로 인해 바뀐 대표적인 사례를 경기 수원시 영통구청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전의 영통구청사 1층과 2층 복도 공간은 적잖이 관공서 분위기를 풍기는, 그저 그렇게 소담스럽게 꾸며진 공간이었다. 이제 그 공간은 ‘갤러리 영통’이라는 미술관으로 본질이 바뀌었다.
‘한 사람의 힘’은 영향력이 크다. 본질이 변하는 것도 그 한 사람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의 고뇌와 결단이 방향을 결정하고, 그 뒤를 집단지성이 구체화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관공서 문화혁명’을 이룬 박래헌 영통구청장도 그 한 사람이다. 박 구청장은 영통구 개청 15주년을 맞아 지난 11월 16일 ‘갤러리 영통’을 오픈했다. 2019년 1월 말까지 열리는 오픈 특별기획전에는 수원 영선갤러리(관장 김형진)의 후원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박수근,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이두식, 홍일화, 손동준, 제프쿤스 등 12명 작가의 작품 52점이 전시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홍일화 작가는 그 취지에 공감해 개막식 날 직접 방문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지난달에는 매탄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700여명이 5개 팀으로 나뉘어 나흘 동안 특별기획전을 관람했다. 신현수 교사가 기획했다. 그는 “예술중점학교인 매탄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의 힘이다.
고(故) 심재덕 수원시장이 시작한 화장실 문화 개선 노력이 세계화로 이어졌듯, 관공서 문화혁명을 지향하는 한 관공서의 작은 날갯짓이 ‘또 하나의 나비효과’로 이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며칠 전에는 어느 대기업 관계자가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갔다고 하니 이미 그 날갯짓은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갤러리 영통’이 특별기획전 이후에는 작품을 전시하고자 하는 지역작가 등에게 개방하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하니, 숨겨진 작가도 발굴하고 침체한 미술시장도 살리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기대된다.
박래헌 영통구청장은 “딱딱하고 차가운 공공기관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바꾸고 문화를 통해 시민들이 더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갤러리 영통을 조성하게 되었다”며 “시민들의 일상에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작은 동네미술관의 역할을 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라고들 하지만 왠지 그 첨단에는 삭막한 그림자가 느껴진다. 영통구청의 관공서 문화혁명을 향한 날갯짓은 그 삭막함을 중화시키려는 작은 몸부림일지 모른다. “첨단이 주는 기쁨이 타자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예술이 주는 기쁨은 자아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박 구청장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제 막 시작된 갤러리 영통의 세밀한 몸짓은 ‘불쏘시개’다. 수원시 각 관공서로 퍼져 문화도시를 만들고, 나아가 대한민국 모든 관공서로 전파돼 관공서 문화생태의 숲을 이루는 작은 불씨다.
1999년 한국화장실협회 창립을 시작으로 세계 화장실 문화에 영향을 미친 고 심재덕 시장이 세계인들에게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리는 것처럼, 관공서 문화혁명을 시작한 박래헌 영통구청장도 미래에 ‘미스터 갤러리’로 불릴 날이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