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한백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 중인 강화 옥림리 주택신축부지에 대한 소규모 국비지원 발굴조사에서 고려 시대 강화중성(강화군 향토유적 제2호)의 목책 치(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방어시설)와 외황(성벽 밖에 둘러 판 물 없는 도랑)을 처음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고려 조정은 1232년(고종 19년) 몽골 침략에 맞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강화는 1270년(원종 11년)까지 39년간 개경을 대신해 고려 도성 역할을 했다. 대몽항쟁 당시 강화도성은 내성을 비롯해 외성, 중성 등이 차례로 축조돼 세 겹의 성벽이 겹겹이 둘러싼 요새를 구축했었다.
‘강화중성’은 흙을 다져 조성한 약 8.1km에 달하는 토성으로 이번에 발견한 목책 치와 외황이 확인된 지점은 강화중성이 시작하는 강화읍 옥림리의 옥창돈대 부근에 해당한다.
목책 구덩이는 모두 9기로 능선을 따라 한 줄(1열)을 이루는 형태다. 이는 성벽 외부로 돌출된 능선에 치를 만들었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목책 구덩이는 목책에 사용됐던 나무 기둥을 뽑아내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기둥자리를 파내고 파낸 흙으로 다시 메운 상태다.
‘고려사절요’의 기록(권17 고종 46년 6월)에 따르면 몽골은 고려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강화협정을 맺으면서 강화도성을 허물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강화협정이 이뤄진 후, 실제로 몽골 관리가 성벽을 허무는 과정도 감시했다는 기록이 있는 가운데, 이번 조사에서 기록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강화중성의 일부인 목책을 인위적으로 허물고 다시 메운 흔적이 확인됐다.
외황은 목책 치를 두 겹으로 둘러싸고 있다. 외황1은 풍화암반층을 'L'자형으로 파고 바깥쪽을 돌과 흙으로 성벽처럼 다져 올려 도랑을 만들었다. 외황2는 풍화암반층을 U자형으로 파내고 파낸 흙을 바깥쪽으로 쌓아 올려 만들었다.
지금까지 강화중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흙을 다져 쌓은 토성이 확인된 적은 있었지만, 성벽 외부에서 치나 외황과 같은 별도의 방어시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발굴기관은 이번 조사를 통해 고려 강화중성의 성벽 구조와 형태를 규명한 가운데 앞으로 고려 도성의 보존‧정비를 위한 새로운 자료를 축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